[사이언스프리즘] 왜 한국엔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없을까

2022. 1. 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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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구 심화 '베스트' 아닌
새화두 던진 '퍼스트'에 헌정
수상자 70% 30∼44세 때 업적
젊은 과학자 지원 확대 급선무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2021년 12월31일 아침과 2022년 1월1일 아침 사이는 우주의 나이로 보자면 찰나보다도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 아침 떠오르는 해는 전날 뜬 해보다 왠지 훨씬 더 새것 같은, ‘처음’의 느낌이다. ‘처음’은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미완의 상태라 마주할 때마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그 두려움에 처음이기를 포기하고 익숙함에 기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연구 중에 만나는 수많은 발견이 모두 처음이길 갈구한다. 이런 기초과학 연구자의 마음을 가장 잘 반영한 상이 아마도 노벨 과학상이 아닐까 싶다.

지난 12월 말 학교에서, 202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대한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 연구진은 고추에 들어 있는 캡사이신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수용체를 찾는 연구로 시작하여 매운맛이 맛이 아니라 통증감각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캡사이신 수용체가 열을 감지하는 수용체임도 밝히고, 이후 다양한 온도를 감지하는 수용체 계열을 계속 찾아내, 결국 우리가 온도 감각을 하는 기전을 밝혔다. 이번 강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강연 말미에 나온 줄리어스 교수 제자와의 인터뷰였다. 줄리어스 교수의 온도수용체 발견 연구를 주도한 연구자는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마이클 카테리나 교수인데, 카테리나 교수에게 수학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효상 교수가 카테리나 교수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구를 직접 수행한 카테리나 교수 당사자에게 온도수용체 발견 연구과정 속의 에피소드들을 직접 들을 수 있어 학생들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인터뷰 마지막, “교수님이 그 온도수용체를 처음 발견했는데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이름을 올리지 못해 서운하지는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카테리나 교수는 웃으며 “서운하지 않습니다, 줄리어스 교수님이 찾은 온도수용체를 가장 처음 관찰한 사람은 줄리어스 교수님이 아니라 학생인 바로 저였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기초과학 연구자에게 가장 큰 보상은 상이 아니라 자연이 감추고 있던 비밀을 처음 발견하는 기쁨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답변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발견은 실험실의 젊은 과학자들의 몫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인지과학
2022년 우리나라는 기초연구사업에 2017년 대비 2배가 넘는 2조5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하였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면 나라에서 이렇게 큰 투자를 함에도 우리나라 과학계는 왜 아직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내놓는다. 먼저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이 해당 연구업적을 수행한 연령을 조사해보면 대략 30~44세로, 이 연령대 과학자가 전체 수상자의 70%를 차지한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젊은 연구자가 초기에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2022년 우리나라 기초연구사업의 주요 추진방향 중에서 최우선으로 제시된, ‘젊은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안정적인 초기 연구 환경을 조성토록 지원’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리고 노벨상은 기존 연구의 심화, 즉 ‘베스트(best)’에 헌정하는 상이 아니라 기존 기초과학 분야에 새 화두를 던진 ‘퍼스트(first)’에 헌정하는 상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성공이 보장되는 뻔한 연구보다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가까운 일본, 1886년 최초 과학기술대학인 동경대학교가 설립된 지 60여년이 지난 1949년, 유카와 히데키 박사가 첫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이후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슈크로 마나베 교수를 포함, 25명의 일본인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되고 6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추격형 연구개발 모델로 우리나라 산업을 일으키고 국부를 창출하였다. 이제는 국가의 지속적인 대규모 기초과학 지원을 기반으로, 우리나라도 인류사에 기여하는 최초의 발견을 창출하는 선도형 모델로 연구개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2022년이 국격을 제고하는 과학기술 전환의 원년이 되길 소망하며 새해 첫날을 시작해본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 인지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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