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영상 보고도 이상無 판단.. '경계 실패' 軍 왜 이러나

박수찬 2022. 1. 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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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 조사에 드러난 '경계실패'
감시카메라 3대에 실시간 포착
녹화영상 보고도 '이상無' 판단
"형상 흐릿했고 사각지대 발생"
경보 직후 세차례 수색도 '구멍'
발자국·패딩 깃털 등 발견 못 해
文대통령 "경계태세 특별점검"
지난 1일 강원 고성군 동부전선 최전방 지역 인근의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찍힌 탈북 월북자 김모씨의 모습. 합동참모본부 제공
새해 첫날 월북한 탈북민 A씨가 강원 고성군 육군 제22사단 군사분계선(MDL) 철책을 넘을 당시 장면이 GOP(일반전초) 폐쇄회로(CC)TV에 다섯 차례 포착됐지만, 해당 부대가 이를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예상대로 ‘경계 실패’가 확인되면서 군을 향한 질타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시계 고장에 보고 생략까지… 경계태세 ‘흔들’

5일 공개된 합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6시 36분 22사단 GOP 지역 철책을 넘어 월북한 A씨가 철책을 넘어가는 장면은 GOP 내 감시카메라 3대에 다섯 차례 포착됐다. 감시카메라에는 A씨가 남쪽 철책을 기어오르고 넘어가는 장면, 북쪽 철책을 넘어 갈대밭으로 사라지는 장면이 잡혔다. 감시병들은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CCTV 영상에서도 A씨 월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합참 관계자는 “포착된 형상이 흐릿했고 카메라 사각지대 발생 등의 문제로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실시간 포착에 실패해도 녹화된 영상을 재생하면 A씨의 월북 사실을 보다 빨리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녹화영상 재생 시 저장 서버에 입력된 시간과 실제 촬영 시간이 4분 34초 정도 차이가 나면서 월북 장면을 확인하지 못했다. 오후 6시 6∼36분 영상을 확인해야 했으나, 실제로는 오후 6시 2∼32분 영상을 재생하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해당 소초에서 CCTV 메인 서버와 저장 서버의 시간을 동기화해야 하는데, 메인 서버만 작업해 서버들의 시간이 맞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해당 GOP 경계를 맡은 대대의 지휘통제실장은 경계 상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상황을 종료한 뒤 상급 부대와 대대장에게 보고 하지 않았다.
◆경보 울렸는데도 “이상없다”… 귀순 오판까지

A씨가 1일 오후 6시 36분 GOP 철책을 넘었을 때, 과학화 경계시스템에서는 경고음이 울렸다. 해당 지역 GOP 철책은 광망(철조망 센서)을 비롯한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설치된 남쪽 철책, 시스템이 없는 북쪽 철책으로 구성돼 있다. 남쪽 철책을 절단하거나 오르기 위해 하중을 싣게 되면 광망 경보가 울린다.

경보가 울린 직후 소대장 등 6명이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3차례에 걸쳐 점검을 했으나 “이상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월북 사건 직후 군 당국이 정밀점검을 실시한 결과 북쪽 철책을 넘어간 자리에 쌓인 눈에서 발자국이 확인됐다. 철책 위에 설치된 윤형철조망에서는 패딩 충전재로 추정되는 흰색 깃털이 발견됐다.

감시카메라 영상과 현장 확인 미비에 대대 지휘통제실의 보고 누락이 겹치면서 해당 GOP 부대 대대장이 특이상황 발생을 인지한 것은 A씨 월북 직후 약 3시간이 지나서였다. 해당 부대는 열상감시장비(TOD)를 통해 오후 9시 17분쯤 비무장지대(DMZ) 내를 배회하는 A씨를 포착해 신병 확보 작전에 돌입했다. 합참에는 14분 만에 보고됐다.
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조영수 합참전비태세검열실장이 '철책 월북 사건' 초동 조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앞서 발생한 광망 경보 상황에 대한 보고가 누락된 탓에 대대장은 초기에는 귀순으로 오판했다. 합참 관계자는 “당시 대대장은 오후 6시 36분쯤 발생한 광망 경보 상황을 모르는 상태였다”며 “(초기에) 귀순 가능성을 고려해 작전을 했으나 이후에는 월북 가능성을 감안해 작전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A씨는 철책을 넘은 지 약 4시간 만인 오후 10시 49분쯤 군사분계선(MDL) 북측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포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22사단 철책 월북 사건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되는 중대한 문제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점에 대해 군은 특별한 경각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현장조사에서 드러난 경계 태세와 조치, 시스템 운영 문제를 해결하고 군 전반의 경계태세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군은 고개를 숙였다. 원인철 합참의장은 5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번 월북 사건과 관련해 제이슨 바틀릿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4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 지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 기고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요새화된 국경을 개인이 제지 없이 출입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의 북한 국경 감시 능력이 충분한지 의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수찬·이도형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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