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소수자'의 인권은 어디로

한겨레 2022. 1. 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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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엄마, 매 끼니를 고민하며 일상의 평화를 꿈꾸는 사람, 대충 나의 정체성은 이렇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감도 잘하고 다른 사람, 특히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라도 이어가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힘겨워도 아픔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사람이 일상을 이어나간다기보다 오히려 일상이 사람에게 주는 힘을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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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손서정 | 평화·교육연구자

두 아이의 엄마, 매 끼니를 고민하며 일상의 평화를 꿈꾸는 사람, 대충 나의 정체성은 이렇다. 좀 더 내면적으로는 평화를 공부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공감도 잘하고 다른 사람, 특히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매우 교만하게도, 이 일이 나에게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일은 백신 2차 접종을 받은 뒤 일어났다. 접종 후, 2시간 만에 근육이 돌처럼 굳었고, 3일째 되던 날부터 어지러움이 심해졌다. 시선을 15도 각도로만 돌려도 나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하는 세상에서 부엌일은 전혀 할 수 없었기에, 벌써 한달 반 이상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던 강의를 지속하기 위해 모니터 한곳만 응시하며 수업을 했고, 초등학생 아이가 하교 후에 설거지를 했다. 그렇게라도 이어가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힘겨워도 아픔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사람이 일상을 이어나간다기보다 오히려 일상이 사람에게 주는 힘을 깨닫게 했다.

누구나 자신의 일상을 살 권리가 있다. 문득, 한 지인에게 물었던 나의 오만하고 얕았던 질문이 떠올랐다. 휠체어를 타는 그를 동네 산책에 초대했을 때다. 산책 후 식사 장소를 찾다 보니 주변에 휠체어로 접근할 수 있는 식당이 없다는 걸 처음 알아챘다. 간단한 김밥으로 마련한 피크닉에 오히려 기뻐하던 그에게 무심코 물었다. 언제부터 다리를 못 쓰게 됐냐고. 초등학교 때 달리기를 무척 좋아하던 그는 갑자기 허리가 아팠고, 그 뒤로 걷지 못했단다. “아~ 달리는 기쁨을 알았을 텐데, 힘들지 않으셨어요?” 해맑은 얼굴의 대답, “뭐, 그냥 받아들여졌어요.” 뭔가에 쿵 얻어맞은 듯했다.

그런 거였다. 나도 지금 그렇다. 공감한다고 믿는 것과 그 실제를 산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아프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돌봄만을 받는 의존체가 아닌, 내가 소중하게 지켜온 일상을 살 수 있는 주체적인 삶의 지속이 필요하다. 힘드니까 빠져도 된다는 배제가 아닌 배려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소외된 소수자들을 급격히 제외시키고 있다. 방역패스(접종증명서)를 획득하여 일상을 살기 위해, 일상을 아예 잃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백신을 맞아야 할까?

지난해, 포럼에서 섭씨 ‘37.5’도라는 숫자가 ‘신의 고지’처럼 되어 열나는 사람을 돌보던 우리가 열나는 이들을 내쫓는 세상에서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를 토론하고, ‘백신여권’에 대한 우려를 강의할 때만 해도 일년 만에 방역패스가 도입되는 세상을 맞이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리 위기라지만, 인간 존엄의 가치를 송두리째 뒤엎을 만큼의 변화가 빛의 속도로 다가올 줄이야.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기다. 다시 우리가 비판하던 세상으로 복귀하는 데 만족할지, 더욱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기회로 삼을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2019년, 저명한 평화학자의 고향인 노르웨이 오슬로 포럼에서 우리 대통령은 “국민의 일상을 바꾸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국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잘 보고, 정책에 순응하고, 세금을 많이 내고, 어떤 백신을 맞아도 건강하게 살아남는 사람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우리 모두는 언제라도 소수자가 될 수 있기에, 정부의 정책은 가장 약한 자를 보호할 수 있는 촘촘한 안전망을 설치하고서야 시행돼야 한다. 방역패스를 못 받는 국민들만의 지하세계를 창출해서 또 다른 경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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