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성큼'..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 '지렛대' 될까?

신다은 2022. 1. 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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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돌아온 노동이사제
재계 "노조 이익만 대변할 것"
한국노총 "지배구조 개선 견인"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당대표 후보와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노동이사 협의회, 경기도 공공기관 노동이사 협의회, 광주 공공기관 노동이사 협의회 대표들이 2020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노동이사제 공공부문 전면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여야 대선 후보의 공통 공약인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5일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이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다만 전·현직 노동이사와 전문가들은 제도가 어느 쪽이든 그만한 파급력을 내기까지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정부가 공공기관 예산을 통제하는 지배구조가 여전하고, 개별 기업 중심으로 교섭하는 한국 노사관계의 특징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석열 후보의 노동이사제 찬성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우려가 있다’며 이날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날 기재위 안건조정위원회 통과 직후 재계가 노동이사제에 대해 ‘노조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노총은 이날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을 견인’할 것이라며 환영의 논평을 냈다.

노동이사제는 2016년 서울시가 조례를 통해 처음 도입한 뒤 이듬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과제로 채택됐다. 노동자를 공공기관 이사회 이사로 임명해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공공기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도입에 필요한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논의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법 개정 없이 추진할 수 있었던 중소기업은행 등의 ‘노조 추천 이사제’도 사실상 좌초되면서 ‘정부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정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이날 <한겨레>에 “정부는 의지가 없었고 예산·인력을 책정하는 기획재정부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원치 않았다”는 말로 그간의 논의 분위기를 요약했다.

노동이사제가 다시금 공약으로 부상했지만 정부가 주도권을 쥐는 공공기관 노사관계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금 들여오는 노동이사제는 비빔밥을 만든다면서 밥도 김도 없이 참치캔만 들고 온 셈”이라며 “공공기관 자율화 논의가 함께 가지 않으면 노동이사제 실효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고 짚었다. 지금도 기획재정부와 각 주무부처가 공공기관을 통제하고 주요 안건은 미리 사전 조율해서 이사회에 올린다는 것이다. 그는 공공기관 이사회가 정부의 ‘손발’이 아닌 ‘두뇌’가 돼야 한다며 “영국처럼 협약을 체결하는 등의 방법으로 공공기관과 정부 간에 거리를 두는 것이 선결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지방정부가 먼저 조례를 통해 노동이사제를 운영하면서 현장 적용의 경험치가 쌓였다. 활동을 했던 노동이사들은 지배구조를 견제한 기능이 있었지만, 주어진 권한에 한계도 있었다고 말한다. 김재욱 경기도공공기관노동이사협의회 의장은 “할 수 있는 대로 의견을 개진하고 문제점을 지적해 바꾸는 등 보람 있는 순간도 있었다. 다만 도청에서 정무적으로 내려오는 결정이 많다 보니 과반수 의사결정 하에서 노동이사의 권한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조건영 서울시설공단 노동이사도 “방치됐던 예산상의 문제를 찾아내 해결하는 등 회사 사정을 잘 아는 노동이사로서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려 노력했다”면서도 “중요한 이사회 안건인데도 사실상 사후보고로만 이뤄지거나 노동이사의 자료 요청에 실무진이 협조를 기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의 역할을 두고 사내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일단 사업장 내 여러 집단의 요구를 아우르기가 쉽지 않고, 임금교섭 등을 주도하는 노동조합 대표자와 역할이 겹칠 때는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관련 제도를 오래 연구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이사가 특정 노동조합이 아닌 전체 직원을 대표해야 하는데 복수노조가 많은 한국 기업의 특성상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며 “회사에 있는 노조 대표 및 노사협의회 대표와 역할·기능이 중첩될 경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과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노동이사제에 거는 기대는 여전히 있다. 윤정일 부위원장은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정부가 사실상 의사결정과 인력, 예산을 독점하는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드러내고 개선하도록 논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도입 초기엔 노동이사가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았고 기대보다 권한이 작아 실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시행착오를 반영해 실효성 있는 제도를 갖춰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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