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의 장모, 최모씨는 최모씨가 아니다

한겨레 2022. 1. 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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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2월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전 마스크를 벗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손아람 ㅣ 작가

지난달 대통령 후보 윤석열의 장모 최모씨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349억원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하여 부동산 매입 과정에 사용한 최씨를 사문서 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와 부동산 실명법 위반의 세 가지 죄목으로 기소했다. 범죄 내용은 전형적인 경제사범의 것이지만 법규의 형식적 위반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은 것이다.

사문서 위조 자체는 형량이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인 비교적 가벼운 범죄다. 위조 문서의 사용 방식과 의도에 따라 사문서 위조죄는 사기죄와 경합하고, 사기의 경우라면 액수에 따라 특정경제범죄법을 적용해 훨씬 무겁게 처벌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잔고증명서를 믿고 돈을 빌려준 피해자까지 존재했기에 사기 정황은 충분했지만, 검찰은 사기 혐의를 배제하고 오로지 사문서 위조 및 행사에 대해서만 죄를 따졌다. 법원의 형량이 문서 위조의 죄질 범위 안에서 정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위조한 은행 잔고액이 349억원이 아닌 349원이나 혹은 349조원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씨가 저지른 죄는 그저 거짓 문서를 만들어 사용한 것일 뿐이었던 셈이다.

검찰이 최씨의 기소 죄목에서 사기를 배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증빙 서류를 위조하여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이른바 ‘작업 대출’ 유형의 범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사기 죄목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중고차 딜러가 사회초년생들의 심사서류 위조를 도와 은행대출금을 타냈다가 사기로 유죄판결을 받은 작년의 사례가 있다. 이 중고차 딜러는 불과 수백만원의 소득명세서를 위조했는데도 문서 위조범이 아닌 사기범이 되어 징역 1년8개월을 선고받았다. 수백만원대 소득명세서 위조는 사기죄로 1년8개월형, 수백억원대 잔고증명서 위조는 사문서 위조로 징역 1년형.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씨를 향해 쓰인 검찰의 감미로운 기소장은 ‘직장 상사’ 윤석열을 의식한 결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누구든 죄를 지었으면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 책임에는 한계가 있다. 과거 정경심의 표창장 위조에 대해 정권이 무한대의 책임을 요구받지 않았듯이, 윤석열 후보 역시 장모가 저지른 불법에 무한대의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 검찰총장 후보 시절부터 주장해온 것처럼, 가족과 당사자의 일은 원론적으로 별개다. 윤석열은 윤석열대로, 최모씨는 최모씨대로 판단하면 된다. 양자를 분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도저히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위조 잔고증명서를 손에 들고 ‘내 사위가 검사’라고 말하면서 돌아다닐 때, 최모씨는 정말로 윤석열의 장모가 아니었는가? 검찰이 기소 죄목에서 사기죄를 슬쩍 빼버리고 법원은 징역 1년 선고로 맞받을 때도 최모씨는 윤석열의 장모가 아니었는가? 정말로 단지 피고 한 사람일 뿐이었는가? 윤석열 후보의 장모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관대한 처벌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윤석열 후보는 공인으로서의 자신과 사인인 가족의 일을 별개로 평가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최모씨에 대한 강력하고 공평한 처벌을 요구해야만 한다. 공인의 장모가 아닌 사인 최씨가 보통의 사기범처럼, 보통의 경제사범처럼 합당한 엄벌을 받게 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가족에게 차마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면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스스로도 가족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면서 유권자들을 향해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치가 아무리 모순된 것이어도 그따위 윤리학과 공존할 수는 없다. 은행을 속이고, 법원을 속이고, 잔고증명서를 믿고 돈을 빌려준 피해자까지 속여도 사기범이 아닌 단순한 문서 위조범으로 가볍게 처벌받는 특별한 사람인 한, 최모씨는 최모씨가 아니다. 한번도 최모씨였던 적이 없다. 언제나 검찰총장이자 대통령 후보가 된 윤석열의 장모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지난달의 재판 결과를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몇백만원짜리 소득명세서 위조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젊은 중고차 딜러야말로 누구보다 수긍할 만한 설명에 목말라 있을 터다. 우리 사회는 그 젊은이에게 무슨 말을 건네면서 재활을 기원할 수 있을까? 윤석열 후보가 남긴 빛나는 격언을 그대로 읊어줘야 하는가? 경제 역량이 있어야 자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가난한 너는 아직 자유가 무엇인지 모른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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