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與엔 솜방망이, 野엔 철퇴' 法의 질식

기자 2022. 1. 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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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는, 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법규범을 마련하고 국가작용을 이에 따르게 함으로써 인간 생활의 기초가 되는 자유·평등·정의를 구현하는 국가의 기본원리를 뜻한다.

이 정의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면, 부자든 빈자든, 권력자든 범부(凡夫)든 모두 법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정도로만 이해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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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변호사 前 부산지법 부장판사

법치주의는, 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법규범을 마련하고 국가작용을 이에 따르게 함으로써 인간 생활의 기초가 되는 자유·평등·정의를 구현하는 국가의 기본원리를 뜻한다. 이 정의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면, 부자든 빈자든, 권력자든 범부(凡夫)든 모두 법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정도로만 이해해도 된다. 권력자가 법의 테두리를 넘어와 공격할 수 없으니 그 안에서 나는 자유롭다. 법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면 그 안에서 나는 평등하다. 법이 엄정하면 그 안에서 정의는 구현된다. 법으로 이런 모든 가치를 누릴 수 있으니, 약자라고 해도 걱정이 없다. 반면, 법의 테두리를 걷어내면 오로지 권력만 남으니 약자는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불평등의 야생에서 벗어나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기 위해 만든 최고의 도구가 법이다. 그래서 법은 무엇보다 공정을 요체로 한다. 그것이 사라지면 더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법이 정체성을 잃고 무기력해지면 사회는 힘의 강약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고 계급이 생겨난다. 법을 지배계급의 착취 도구로만 인식, 피지배계급이 권력만 탈취하면 저절로 평등이 구현된다고 믿는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국가에서 쉽게 계급이 생기는 것은 법의 이런 기능을 무시한 탓이다. 법의 존재를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현 정권 집권 이후 이러한 법의 기능에 대한 가벼운 인식은 도를 넘은 듯하다.

정권 내내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를 당연시하는 모습이었다. 정권이 무리하게 만든 공수처는 고발사주 사건에서 영장을 3번이나 기각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김건희 씨에 대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무혐의로 가닥을 잡고도 최종 처분을 미루고 있다. 한동훈 검사장이 채널A 사건과 관련해 강요미수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 관해 수사팀이 9차례나 무혐의 의견을 올렸지만, 서울중앙지검은 뭉그적거리면서 처리를 미룬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서 강제추행을 방조했다는 혐의 등으로 고발된 관련자들에 대해 모두 불기소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법원은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사건에 대해 이제야 본격적인 재판을 시작한다. 그새 울산시장은 임기를 채우고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 조국 전 장관의 재판과 관련해 제1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오독(誤讀)해 동양대 강사휴게실에서 발견된 PC에 대해 증거로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재명 연루설이 불거진 성남 조폭 이준석에 대해 이례적인 보석이 이뤄지고, 대법원은 이 조치를 타당한 결정이라고 한다. 정권 내내 이러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각 사정기관의 판단에 나름의 논리는 다 있는데, 유독 여권에는 솜방망이를, 야권에는 철퇴를 내리치는 느낌이다. 재판과 수사는 사람이 하는 거고 판사나 검사도 사람이라, 정권 역성들기나 눈치 보기에 대한 유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유혹에 약해져 점점 법의 잣대를 구부리다 보면 결국 부러진다. 종국에는 법이 필요 없게 되고, 판사나 검사는 그 존재가 무의미해진다. 이들은 정권 편을 드는 중독 증세로 결국 자신들의 정체성을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마치 마약에 중독된 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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