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터키 포퓰리즘과 흡사한 李 경제관

기자 2022. 1. 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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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경제부장

브렉시트 2년 고달픈 영국인

60%이상 “잔류했어야” 후회

분열·무능정치의 가혹한 대가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는 궤변

터키 독재 논리와 다를 바 없어

위험천만한 실험 당장 멈춰야

2020년 1월 30일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브렉시트 단행 뒤 영국인의 살림살이는 나아졌을까. 불행히도 아니다. 고립된 영국 기업의 거래와 수익은 줄고 비용은 늘었다. 여러 경제지표와 교역·물류 상황은 영국인의 고달픈 현실을 보여준다. 여론도 바뀌었다. 최근 영국 여론조사 결과, EU 탈퇴파의 42%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EU 잔류파의 부정평가(86%)는 말할 나위도 없다. 2016년 6월 24일 영국 유권자의 국민투표 공식 개표 결과는 탈퇴 51.9%, EU 잔류 48.1%였다. 이를 반영해 계산하면 탈퇴파 51.9% 중 42%인 21.8%가 지금은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잔류파 48.1% 중 86%인 41.4%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영국인의 63.2%가 EU 잔류가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인정한 셈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예견됐던 상황이다. 포퓰리즘 외에는 해석이 안 된다. 수년간 탈퇴파 사이에선 “왜 영국이 EU 전체를 먹여 살리느냐”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어갔다”는 분노가 팽배했다. 정치권은 부화뇌동했다. 2015년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에 의해 법안이 발의되고, 국민투표를 거쳐 2020년 1월 정식 발효될 때까지 이런 행태는 되풀이됐다. 탈퇴 협상을 주도했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최근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 ‘바퀴벌레’에서 풍자의 주인공이 됐다. 매큐언은 브렉시트 무대 뒤에서 벌어진 영국 의원과 각료들의 포퓰리즘과 추악한 분열 정치를 꼬집었다.

터키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제왕적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왜곡된 이념과 과학에 반하는 경제관이 서민 고통을 가중시킨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를 넘었는데도 수개월째 금리 인하를 고집하고 있다. 보편타당한 경제논리와 상식은 무시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거나 ‘터키 리라화 가치 폭락을 통해 수출경쟁력을 높인다’는 식의 엉터리 경제논리를 앞세운다. 민생을 파탄으로 내모는 수입물가 급등의 악순환은 감춰진다. 게다가 에르도안 정권은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인을 형사 고소하면서 금융시장 혼란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들 사례를 보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곳곳에서 밝혀온 경제철학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서울대 경제학과 강연에서 “경제는 진리나 과학이 아니라 정치”라고 했다.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 후보 말대로라면 전 세계에서 통용돼온 경제과학, 사회과학 개념이나 검증된 경제 방정식은 폐기될 처지다. 정치에 휘둘리는 경제정책이 초래할 파국에 대한 성찰은 없다. 자영업자에게는 “국가부채를 낮추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국가부채는 이월하면 그뿐”이라는 말로 확대 재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정강·정책 연설에서는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정부의 지원 대책이 가장 적은 나라”라는 점을 강조했다. 4일에는 정부와 여론의 반대로 철회됐던 전(全) 국민 재난지원금을 또다시 들고나왔다.

유추해보면 현대화폐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이 머릿속에 있는 듯하다. 돈을 찍어내서라도 정부 지출을 늘리라는 논리다. 문제는 MMT가 경제학계의 변방 이론이자 검증되지 않은 이단아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폐의 무제한 발행은 통화 증발로 인한 가치 하락, 대외신인도 저하로 이어지고 자칫 국가부도 위기로 내몰 수도 있다. 십분 양보해도 기축통화국에서 한시적으로만 운영 가능한 정도다. 올해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는다는 경고등이 깜박이는 한국 상황에서는 난리 날 일이다. 미국과 달리 돈을 마구 찍어내고, 정부가 빚을 내 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전하려다 곳간이 거덜 날 수 있는 한국의 처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돈 걱정 없이 모두 부자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자체가 환상이다. 그러잖아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14일 1.00%인 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정도 올릴 가능성이 크다. 올해 1.75%까지 오를 수도 있다. 남들이 다 옳지 않다고 하는 주장을 고집하는 이 후보에게만 경제는 과학이 아닐 뿐이다. 경제이론에도 못 미치는 가설 수준의 주장을 갖고 국민을 현혹해 실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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