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기승전 종전선언'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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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임기를 4개월 남긴 문재인 정부의 올해 외교 목표는 '기승전 종전선언'이었다.
문 정부가 종전선언을 밀어붙여 임기 내내 매달려온 대북정책에서 레거시(업적)를 남기려는 의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올해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은 종전선언에 또다시 외교 자원·역량을 올인할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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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워싱턴 특파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임기를 4개월 남긴 문재인 정부의 올해 외교 목표는 ‘기승전 종전선언’이었다. 문 대통령은 3일 신년사에서 “미완의 상태인 평화를 지속 가능한 평화로 제도화하는 노력을 임기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며 “정부는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까지 남북관계 정상화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막바지까지 종전선언을 밀어붙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정의용 외교장관도 지난해 12월 29일 브리핑에서 올해 최우선 외교 목표로 국민 보호와 함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종전선언 문안이 한·미 간 이미 사실상 합의가 돼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종전선언 합의 여부를 묻는 질의에 즉답 대신 “북한과의 대화·외교를 통해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미 간 온도 차가 더는 새삼스럽지 않지만 문안 합의가 끝난 상황에서도 미국이 확인을 꺼리는 것은 종전선언 실효성에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 정부의 ‘종전선언 입구론’에 동맹 중시를 공언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마지못해 동의했다 해도 갈 길은 첩첩산중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호주 방문 당시 “미국, 중국, 북한 모두 종전선언에 원론적 찬성 입장을 밝혔다”고 단언했다. 정 장관은 “종전선언 제안에 북한은 일련의 신속한, 그리고 긍정적 반응을 보여왔다”고 밝혔다. 미국 정·관계 및 전문가들의 우려는 차치하더라도 남·북·미·중이 모두 종전선언을 지지한다는데 남북 간, 미·북 간 대화 재개 조짐은 전혀 기약이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단 한 줄의 대남·대미 메시지도 내놓지 않았다. 문 정부가 주장한 정전협정 체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치적 선언’은 북한이 대화 조건으로 내세운 제재 철회 등 대북 적대시 정책·이중기준 철회와 거리가 한참 멀기 때문이다.
문 정부가 종전선언을 밀어붙여 임기 내내 매달려온 대북정책에서 레거시(업적)를 남기려는 의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올해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은 종전선언에 또다시 외교 자원·역량을 올인할 여유가 없다. 국제 외교무대의 상수가 돼버린 미·중 패권 경쟁과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위협 속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학기술 경쟁, 기후변화 대응 등 외교의 영역이 전통적 군사·안보 분야에서 탈피해 무한확장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11월 미국 중간선거와 10월 중국 공산당 20차 당 대회 등 굵직굵직한 선거 및 정치일정도 빼곡하다. 특히 연초부터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추진, 중국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 개막 등 미·중 충돌 격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도 아닌 대화 분위기 조성 내지 이벤트용 종전선언을 위해 가뜩이나 좁아진 한국 외교의 입지를 더 좁히는 것은 직무유기다. 5월 출범하는 차기 정부, 더 나아가 한국 외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남은 임기라도 종전선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오직 국익만을 위해 원점에서 급변하는 외교 환경에 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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