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시네프리뷰]

2022. 1. 5. 09: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제야 만나는 '컬러사진의 선구자'
[주간경향]

영화 사이사이 끼어드는 주옥같은 사진작품들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게 한다.


제목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In No Great Hurry: 13 Lessons in Life with Saul Leiter)
제작연도 2013
제작국 영국
상영시간 78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토머스 리치
출연 사울 레이터, 마깃 어브
개봉 2021년 12월 29일
등급 전체 관람가

piknic / GLINT


토드 헤인즈 감독이 2015년 연출한 〈캐롤〉은 두 여인의 특별한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백화점 장난감코너에서 마주친 직원 테레즈와 유한부인 캐롤은 전혀 다른 처지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운명적 이끌림을 거부하지 못한다.

이 작품은 자체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감독이 기획 단계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혀 주목받은 은둔의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존재가 대중에게 폭넓게 소개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극중에서 테레즈는 늘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니며 주변을 필름에 담는다. 그의 행위나 포착하는 일상의 잔상도 그렇지만,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처연한 정서와 이를 역설적으로 시각화하는 원색적 미술과 서정적 촬영의 관점은 올곧이 사울 레이터를 향한 헌사다.

사울 레이터는 1923년 피츠버그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를 이어 탈무드 학자가 되길 바랐지만,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20대에 학교를 중퇴하고 뉴욕에 정착한다. 이후 생계를 위해 전문 패션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다수의 유명잡지에 사진을 게재했다.

흑백사진이 예술로 인정받은 반면 컬러사진은 경박하다는 폄하가 팽배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레이터는 묵묵히 자신만의 실험적 스타일을 고수해갔다. 수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그의 가치가 재평가받은 것은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였다.

조용히 더 가까이 인물에 다가서다

영국 출신으로 전문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토머스 리치는 CF감독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연히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 〈얼리 컬러(Early Color)〉를 접하고 한눈에 매료당한 그는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그는 사울 레이터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처음엔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을 허락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자평하며 사생활을 중요시하던 노인은 경계심을 쉽게 내려놓지 않았다. 승낙을 얻기 위해 이어간 3년 남짓의 만남과 기록은 결국 1시간이 조금 넘는 분량으로 편집돼 한편의 단출한 영화로 완성됐다. 영화가 공개된 2013년은 레이터가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보통의 인물 다큐멘터리에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평론가나 지인 등의 증언이나 인터뷰가 등장하지 않는다. 관련 인물들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한 채 오직 사울 레이터 본인의 목소리와 그의 주변에만 집중한다. 심지어 그의 인터뷰조차 뚜렷한 방향성이나 의도 없이 파편적으로 배치된다. 온갖 잡동사니가 무질서하게 널려진 아파트를 뒤늦게 정리하겠다며 뒤적이는 노인의 손놀림은 더디기 그지없고, 잊고 있던 물건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 자리에 쌓이는 것은 열정이 가득했던 젊은 날에 대한 탁한 기억과 회한이다.

전시회와 함께하는 특별한 영화상영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거닐며 이웃들과 농담을 주고받거나, 거실 낡은 의자에 앉아 과거를 추억하며 미소를 짓고, 때로는 사소한 이유로 투덜거리는 그의 꾸밈없는 모습은 그 어떤 기교보다 강렬한 진실성을 획득한다.

13개로 나뉜 각각의 단락은 소제목을 달아 관객들이 주목해봐야 할 부분을 지목하고 이해를 돕는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좀더 직관적으로 궁금해하는 인물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영화 사이사이 끼어드는 주옥같은 사진작품들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닫게 한다.

영화 개봉에 발맞춰 그의 작품을 좀더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전시도 진행되고 있다. 사진전 ‘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Saul Leiter: Through the Blurry Window)’는 영화의 수입사가 운영하는 전시 공간 ‘피크닉(piknic.kr)’에서 3월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사울 레이터의 대표 사진작품의 전시는 물론 영화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까지 한 번에 관람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영화관에는 영화 속에서 그가 앉아 있던 실제 의자와 그림 등의 소품을 뉴욕에서 공수해 꾸민 ‘사울의 방’ 테마 공간을 더해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활동사진으로 기억하는 사진작가들

ⓒ Saul Leiter Foundation


보편적으로 뚜렷한 서사와 다양한 기교를 동반하는 영화에 비해 사진은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더 크게 부여받는다. 하지만 때론 한장의 사진에 담길 수 있는 정서와 메시지는 ‘사실’을 넘어 무한대로 확장되기도 하고, 이는 예술의 영역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렇게 유명 사진작가들이 존재하고, 당연히 이들의 삶과 업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존재한다.

2013년 발표된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한 무명 여류사진가의 비밀스러운 삶을 뒤쫓는다. 경매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의문의 필름박스는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진작가의 존재와 작품들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지만, 진실이 드러날수록 고독한 개인의 인생과 대비되는 요란한 현실의 모습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미국 공영방송 PBS가 제작한 연작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방영한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2006)은 ‘롤링 스톤’, ‘베니티 페어’, ‘보그’ 등 유명잡지의 전속 사진작가로 명성이 드높았던 애니 레보비츠와 화려한 작품을 재조명한다.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은 국제 경제분석가에서 최고의 리얼리즘 사진작가로 거듭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치열한 삶을 반추한다. 영화계의 거장 빔 벤더스와 살가도의 아들인 훌리아노 살가도가 공동연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포토그래퍼이자 저널리스트, 영화감독으로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는 레이몽 드파르동의 작품세계를 감성적으로 담아낸 〈프랑스 다이어리〉(2012),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2016), 〈메이플쏘프〉(2016), 〈B면: 엘사 도프먼의 폴라로이드〉(2016), 〈혼드로스: 세상이 이들의 눈물을 알도록〉(2017) 등도 사진과 작가에 관심 있는 관객들이라면 필히 찾아볼 만한 작품들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