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임금 인플레]② 공장·건설현장 인력 없어 난리.."임금 오를 수밖에"
임금 급등에 '기술직 자부심' 가지고 일하는 외국인도 늘어
"베테랑 외국인 기술인력 적극 활용해야" 목소리
(인천·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3명이 할 일을 2명이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인천 남동구 국가산업단지에서 내국인 4명과 외국인 6명 등 10명의 직원을 데리고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부품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이모(50) 사장의 얘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그가 고용하던 이주노동자는 지난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이 사장은 "지난해 초부터 고용노동부 등에 이주노동자를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힘들고 박봉'이라는 인식 탓에 내국인 채용은 더 힘들다"고 전했다.
그는 "임금을 더 준다면야 구할 순 있겠지만, 중소기업 사정상 그게 쉬운 일이냐"며 "이전부터 손발을 맞춰온 몽골 출신 근로자를 중심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들이 (체류기한 만료로) 떠나면 그 이후에는 어쩌나 싶다"고 한숨을 쉬었다.
2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이주노동자 입국 지연이 길어지고 있다. 제조업과 건설 현장에서는 구인난과 함께 급상승한 임금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외국인 구인난과 임금 급등은 올해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에서는 우리 제조 현장을 떠받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부심이 커지고, 이들의 숙련기술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견해도 힘을 얻고 있다.
"제조·건설현장 외국인 몸값 20% 뛰어올라"
지난해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제조업체 792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2.1%가 '인력 부족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입국한 외국인은 2019년 4만208명에서 2020년 4천806명으로 '10분의 1토막' 났다. 지난해에도 8월 말까지 3천496명에 그쳤다.
'저렴해서 외국인을 고용한다'는 통념은 이제는 옛말이 됐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한 제조공장의 총무 A씨는 "지난해만 해도 12만∼15만 원으로 형성됐던 이주노동자 일당이 올해 들어서는 10∼20%나 더 올랐다"고 전했다.
건설 현장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전국 최대 규모 인력시장인 서울 남구로역에 있는 인력업체 실장 박모(51) 씨는 "일거리를 찾는 외국인 노동자가 예년의 70∼80% 수준으로 줄었다"며 "동시에 이들의 몸값도 20%는 더 뛴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고용허가제(E-9), 방문취업(H-2) 등의 자격으로 체류하는 이주노동자는 34만6천여 명으로 1년 전보다 5만7천 명 넘게 급감했다.
고용허가제는 취업 절차를 밟고 입국한 외국인이 제조업이나 농어촌 현장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방문취업은 중국 등 외국 국적 동포들이 건설업이나 제조업 등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다.
더구나 내국인들은 '취업은 쉽고, 돈은 더 주고, 덜 힘들다'고 소문난 배달업 등으로 많이 빠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인력시장의 외국인 의존도는 더 커졌다.
남구로역 근처에서 10년째 인력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과거 내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이 5대 5였다면 (내국인의 감소로) 지금은 3대 7 정도로 기울었다"며 "외국인은 중국 동포와 조선족이 중심이며, 최근에는 한족(漢族)의 비중이 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베테랑 외국인', 이젠 귀한 몸으로 대접받는다
생산 현장에서는 5년 이상 근무한 숙련 외국인이 귀한 몸으로 대접받는 분위기도 퍼지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자동차 내비게이션 등에 필수 부품으로 쓰이는 회로기판 공장을 20년째 운영하는 장모(45) 대표는 내·외국인 차별은 이제 옛말이라고 강조했다.
"소음도 심하고 온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현장이잖아요. 힘들죠. 내국인은 잘 오지도 않거니와, 일을 해도 1년을 못 버텨요. 그 사이에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들은 경력을 쌓으면서 10년 가까이 일하는 베테랑이자, 귀한 직원으로 자리 잡은 거죠."
장 대표는 "요즘같이 사람 귀한 시대에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일 잘하는 게 최고"라며 "한국인이라고 옛날처럼 자존심 세울 게 아니라, 초보이고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외국인 밑에서라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김포 하성면에서 변압기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하성복(52) 대표는 2018년부터 함께 일해온 필리핀 출신 A(34) 씨와 논의 끝에 한 차례 체류를 연장했다. 이에 그의 체류 기간은 3년에서 4년 10개월로 늘어났다.
4년 가까이 손발을 맞춰온 터라 호흡이 척척 맞는다. 요즘 같은 상황에 이만한 직원도 없다고 한다. 상황만 맞는다면 체류 만료 기간인 4년 10개월이 지나도 재입국해 다시 일할 것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
하 대표는 "이 친구야말로 숙련공이자 전문가"라며 "이제는 '사장님, 설계도 여기 잘못됐어요' 하면서 내 실수를 짚어내기도 할 정도로 일취월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은 여기까지 일하러 오지 않아서 최근에는 전역한 아들이 함께 일하기로 했다"며 "코로나19 탓에 인력 수급이 힘들어졌고, 숙련공 찾기는 더 어렵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남동인더스파크역 근처 외국인 숙소로 쓰이는 한 오피스텔 앞에서 만난 파키스탄 노동자는 "금형 제조공장에서 3년 넘게 일하고 있고, 최근에는 작업반장이 됐다"며 "대표를 제외하면 현장에서 내가 가장 오래 일했고, 수당 등이 붙어 월급도 올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올해도 외국인 인력난 우려…"숙련 외국인 적극 활용해야" 목소리
현장에서는 올해가 더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말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 입국의 정상화 계획을 밝혔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것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앞서 정부가 지난해 출국 대상에 오른 고용허가제(E-9), 방문취업(H-2) 외국인 7만∼11만 명에게 체류 기간을 1년 연장하는 긴급 조치를 시행했으나, 이 또한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업주들은 외국인 인력의 공급을 늘려달라고 아우성친다.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제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소기업으로 확대된 것도 부담스럽다.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 제조업체 중 95.3%는 올해에도 추가적인 체류 기간 연장조치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 기업의 65.0%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인력 수요가 커졌다고 했다. 사업주들은 제조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 도입 쿼터를 현재 연 4만 명에서 5만 명 이상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한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제조업의 생명은 제때 약속한 수량을 납품하면서 쌓이는 신뢰"라며 "지난해까지는 잔업이나 휴일 근무로 차질을 빚지 않았지만, 올해에도 그럴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구인난에 따른 외국인의 임금 상승은 시장 논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며, 이를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국인 노동자를 '값싼' 인력으로만 생각했던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베테랑 기술인력 양성 등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장기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배규식 상임위원은 "5년 이상 한국에서 성실하게 일한 외국인이라면 해당 분야에서는 베테랑이자 고급 인력"이라며 "내국인의 (힘든 일) 기피로 인해 이들의 존재감이 더욱 커진 만큼,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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