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44] 불안과 단절의 시대, 호랑이 같은 본능으로
나는 태평양 한가운데 고아가 되어 홀로 떠 있었다. 몸은 노에 매달려 있었고 앞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있고, 밑에는 상어가 다니고, 폭풍우가 몸 위로 쏟아졌다. 이성적으로 이런 상황을 본다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물에 빠져 죽기를 바라리라. 하지만 나는 힘껏 노에 매달렸다. 무조건 매달렸다. 공포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호랑이보다 태평양이 더 두려웠다. - 얀 마텔 ‘파이 이야기(라이프 오브 파이)’ 중에서
2022년 호랑이해가 시작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정권이 곧 막을 내린다. 그렇다고 더 좋은 시대가 온다는 약속은 없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과 세상이 진화하고 진보하는 것 같아도 그것이 꼭 지성과 발전과 안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꼼꼼히 대비해도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미래,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많은 독자가 동명 영화로 먼저 만났을 소설의 주인공 파이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가족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캐나다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난다. 배는 침몰하고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건 파이와 우리에서 빠져나온 리처드 파커란 이름의 호랑이뿐이다. 소년은 맹수와 함께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으며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227일 만에 구조된다.
어떻게 작은 구명보트에서 맹수와 공존할 수 있었을까? 파이는 호랑이를 떼어놓을 수도 있었다. 혼자 살아남기도 버거운데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250㎏의 호랑이를 길들이고 먹이고 보살폈다. 그 선택은 옳았다. 야생의 본능을 잃지 않은 호랑이 덕분에 파이는 굶어 죽지 않았다. 호랑이 때문에 슬픔과 두려움, 절망과 외로움에 빠질 여유 따위는 없었다.
경제활동은 막으면서 세금과 물가만 올리는 불안의 시대, 사람과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단절의 시대다. 그래도 호랑이 같은 본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절망’이라는 책 속의 한 문장처럼, 오늘이 더 나은 내일의 시작이라는 희망, 절망에 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삶의 무거운 배낭을 추슬러 메고 다시 힘껏 일어서야 하는 1월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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