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목사의 듀얼 타임 시계
해외여행이 잦을 때, 나는 항상 듀얼타임 시계를 손에 찼다. 손목시계는 두 곳 시간을 가리킨다. 하나는 현지 시간이다. 또 하나는 내가 떠나온 한국의 시간이다. 두 가지 시간을 가지고 있으면 참 편리하다. 머리를 굴려 더하기 빼기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수에 맹한 내 머리에 가장 적절하다. 하늘길이 막혀 멀리 여행 떠날 일이 없는데도 나는 여전히 ‘듀얼타임’ 시계를 고집한다.
몇 시 몇 분을 가리키는 시각과 달리 시간은 실제 둘이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그것이다. ‘크로노스’는 1년 365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찾아오는 물리적 시간이다. 가만히 있어도 흘러간다. ‘카이로스’는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는 나만의 시간이다. 언제든지 소환이 가능하다. 추억하고 기념하게 된다.
누구에게는 새해 첫날조차도 크로노스일 수 있다. 또 다른 누구에게는 12월 끝자락의 어느 날이 카이로스일 수 있다. 지난 25일, 나는 기다리던 손녀를 얻었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잊을려야 잊을 수 없는 카이로스다. 누가 그랬다지 않은가?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손녀부터 얻을걸 그랬다’고.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골고루 주어지는 시간이다. 어떤 사람도 크로노스를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카이로스는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인생의 변곡점이 된다. 지구촌 한 마을에서는 15세가 되면 목에 메모장을 걸어준다. 메모장에는 기뻤던 일과 기쁨이 지속된 시간을 적는다. 그가 숨을 거두었을 때 크로노스의 나이가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을 묘비에 새긴다고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새해가 왔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매일매일을 의미 있게 살 때 매일이 새해가 된다. 내가 매일 차는 듀얼타임 시계에는 ‘Carpe Diem’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이날을 붙잡아라’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하는 거다. 이번에는 시간이 아닌 삶의 나침반이다.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은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3년 되는 10월 2일, ‘카르페 디엠 데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고 99%의 절망을 1%의 희망으로 이겨냈다.
팬데믹의 두 번째 새해, 독자 모두에게 내 손목시계를 선물하고 싶다. 카이로스를 가져다 줄 Carpe Diem 말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인 부탁에 후배 ID로 지명수배 조회해 준 형사팀장
- 스포츠클럽 광남고, 서울 명문 성남고를 꺾었다
- 옛 경인고속도로 옹벽 반세기 만에 철거… 단절된 생활권 회복 기대
- 경기 후 눈물 흘린 심판과 달래는 선수… K리그2서 무슨 일?
- 아파트 화단서 비닐봉지에 든 5000만원 발견…경찰 수사
- 빵사러 와서 발만 동동 구른 꼬마…한눈에 “실종이다” 알아본 손님 정체
- 어떤 카드 쓰는 게 좋을까, 토스 금융 안내서 ‘2위’
- 청룡기에 나타난 ‘닥터K’ 김재원…장충고, 세광고 누르고 2회전 진출
- 대낮 학원 화장실서 여고생에 흉기 휘두른 10대 남학생 숨져
- 與, “정신 나간” 논란 빚은 韓美日 ‘동맹’ 표현 ‘안보협력’으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