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외교안보정책, 실용의 공공재로 돌려놓을 때다

조경환 |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22. 1.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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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임인년 새해, 외교안보가 대선 국면에서 또다시 출렁거린다.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정부와의 발전적 차별화로 가든지, 윤석열 후보가 ‘ABM’(Anything But Moon, ‘반문’)으로 가든지 분명한 것은 바뀐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연구원의 ‘신정부 외교정책 인식조사’(2021년 11월8~10일)에 따르면 국민은 빠르게 보수화되어 가고 있다.

조경환 |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대륙과 해양 세력의 교량인 한반도는 강대국의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역사를 안고 있다. 분열이 늘 국란을 불렀고, 그 국란 앞에 더욱 분열되었다. 그리고 참혹한 후과는 어김없이 민초가 다 받아냈다. 짧게는 70년의 현대 한국 외교는 또 어떠한가. ‘친미, 동맹 중심의 국제공조파’와 ‘반미, 친중의 민족공조파’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결의 장이다. 북한, 북핵 이슈에는 진영논리가 국민 여론으로 포장되어 작동했다. 관성적인 이분법적 접근의 근저에 미·중 경쟁이 자리하다 보니 정책은 늘 ‘도돌이표’이다. 중간을 지키기가 어려운 국가사회 구조이다. 집권세력이 포퓰리즘에 기댈수록 정통 관료와 전문가들은 밀려난다. 담론은 여지없이 파편화된다.

그래서 얻은 것은? 주요 7개국(G7) 반열에 오르고 G10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걸맞은 외교가 없다. 전략이 안 보인다. 원칙이 없고 정체성이 없다. 그러니 국제무대에서 말발이 안 선다. 5년마다 바뀌는 대북정책을 북한인들도 어찌 장단을 맞추겠는가? 실효적 대북 레버리지가 없다는 비난이 그래서 당연하다.

문제는 이제 국제사회의 현상과 현실이 복합적이라는 데 있다. 미·중관계는 과거의 ‘안미경중(安美經中)’과 같은 단순 논리로는 해법이 없다. 안보와 경제가 연결된 지 오래다. 공급망, 기술 경쟁과 사이버 안보 등 사안별로 국가의 이해가 다르다. 미, 일, 호주와 함께 ‘쿼드(QUAD)’에 참여한 인도는 대중 관계를 중시한다. 뉴질랜드는 미, 영, 캐나다, 호주와의 비밀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가맹국이지만, 중국과는 밀접하다.

중국이 힘을 가졌을 때 과연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봐야 한다. 지금의 패권 경쟁이 어느 일방의 승리로 결말 날 것이라고 예견하는 학자는 드물다. 여기에 역설적으로 한국 외교의 공간이 있다. 우리도 주권 존중과 인권 같은 인류보편적인 가치가 지켜지는지를 따져볼 정도의 용기를 가질 만해졌다. 동맹을 바탕으로 미국을 적절히 제어할 수도 있고, 또 중국과 협의할 수 있는 터가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등 생각이 비슷한 국가들과의 연대는 미·중의 중간에 중대한 룸을 만들어 줄 전략적 선택지다. 팬데믹, 기후위기 등 새로 등장한 안보 위협에 대한 국제 연대와 협력은 또 어떠한가? 우리의 외교 지평을 넓힐 분야이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도 집단지성은 분명 있다. 기술패권과 가치 경쟁을 벌일지라도 군사적 대결로 가는 무모함은 절제할 것이다. 외교안보 사안을 미·중 간 선택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북한은 지금 어려운 상황이다.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을 마주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말에 절박감이 묻어 있다. “우리한텐 시간이 중요한데”라고 말이다. 그때 트럼프 대통령은 “우린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북한은 잠재력이 뛰어나고 굉장히 좋은 국가다”라고 받아넘겼다. 회담이 끝날 무렵 김정은 위원장은 또 말한다. “우리한텐 시간이 중요한데….” 그로부터 어언 3년, ‘정면돌파’로 갔으나 실적은 없다. 김정은 정권은 생존의 지점에 있다. 중국이 그들에게 준 것은 연명뿐이다. 활로를 열어줄 미·북관계는 1년째 교착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 문제와 중국 관리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남은 시간은 4개월이다.

일찍이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여야, 진보·보수가 함께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성안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맹과 대북 포용을 동시에 가져가는 창의와 용기를 실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의 실용을 택했다.

외교안보만큼은 정파를 넘어, 정부를 넘어 국익의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여당과 야당이 굳이 “대척에 서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오직 실용의 공공재여야 마땅하다.

조경환 |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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