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53] 직장 생활은 마음먹기 나름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2022. 1.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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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언론인 월터 배젓은 “은행원은 놀고먹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쁘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놀고먹지는 않더라도 은행원의 일이 단조롭기는 하다.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이다. 시인 T. S. 엘리엇도 은행 생활이 너무 단조롭다고 느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돈이 필요한 나머지 로이드은행에 취직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이 돈을 모아 그를 탈출시켰다. T. S. 엘리엇에게 은행이란, 문학성을 말라 죽게 만드는 ‘황무지’였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케네스 그레이엄은 월급을 많이 주는 영란은행을 떠나지 않았다. 자기의 글솜씨도 숨겼다. 총재 비서실장으로 정년퇴직한 뒤에야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앞을 못 보는 아들에게 들려주려고 쓴 글들을 묶은 그 책은, 지금도 전 세계가 사랑하는 영미권 최고의 동화책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에도 숨은 작가가 있었다. 강경상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박용래였다. 그에게도 은행원 생활은 맞지 않았다. 더구나 해방 직전의 조선은행은 놀고먹기는커녕 철야 작업을 밥 먹듯 하는 곳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18세 문학소년에게 일상의 고단함을 잊는 유일한 즐거움은 시상(詩想)이었다. 거기서 나온 것이 ‘저녁 눈’을 포함한 주옥 같은 시들이다. 요즘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조선은행은 두둑한 월급 때문에 선망의 직장이었다. 하지만 옌볜 용정촌출장소의 전홍섭은 월급보다 독립에 관심이 많았다. 김좌진 장군에게 군자금을 실은 열차의 도착 시각을 알렸다. 극비 정보를 접수한 김좌진 장군은 그 열차의 현금을 탈취하여 무기를 마련하고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전홍섭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환경을 탓하지 마라. 고리타분한 은행원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작가도 되고, 독립운동가도 된다. 어제(1월 4일)는 1920년 옌볜 현금 탈취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소재였던 그 사건의 기념비가 지금 용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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