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출렁다리 전성시대의 그늘

박연직 2022. 1. 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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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관광상품 베끼기 경쟁
전국서 출렁다리만 196개 운영
머지않아 동네시설 전락 우려
몰개성적 정책.. 지방자치 무색

경남 고성군은 공룡세계엑스포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행사가 열리면 전국에서 찾는 관광객으로 숙박업소가 모자랄 정도다. 지난해 10월 개최한 공룡엑스포 때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68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2006년부터 시작한 엑스포에는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 100억원 정도의 경제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인구 5만여 명에 불과한 기초자치단체가 공룡을 통해 이름을 날린 것은 20여 년이 채 안 된다. 이학렬 전 고성군수는 2002년 당선 이후 지역에 산재한 공룡 발자국 화석을 허투로 보지 않았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끝에 공룡 발자국을 스토리텔링 관광상품화하기로 했다. 그 결과물이 공룡엑스포이다. 지역만이 갖고 있는 자원을 성장동력으로 만들어 내 지방자치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다른 자치단체의 현실은 어떤가. 이웃 자치단체가 어렵게 만든 사업을 말이 좋아 벤치마킹이지 별 고민 없이 그대로 도입하고 있다. 베끼기 행태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강원 화천군이 산천어 축제를 겨울 대표 축제로 성공시키자 자치단체마다 열목어와 송어 등 물고기를 소재로 한 축제를 우후죽순처럼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름만 바꾼 영화제도 전국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박연직 사회2부장
이제는 축제를 넘어 케이블카, 짚라인, 모노레일 등 관광시설물 설치가 유행이다. 산과 강, 호수 등 자연경관이 비슷한 상황에서 마음만 먹으면 관광시설을 모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베끼기 남발은 원조를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하향 평준화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무작정 베끼기는 힘들게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 자치단체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 버린다.

지난해 늦가을 우연찮게 한 자치단체의 출렁다리를 지났다. 출렁다리를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광객으로 붐볐다. 전국에서 몰려든 차량을 관리하기 위해 별도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 출렁다리에서 승용차로 1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3곳의 자치단체에서도 이미 출렁다리를 설치했거나 공사 중이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행정안전부 집계 현황에 따르면 경북 39개, 경남 35개, 강원 23개, 충북 17개 등 전국에 196개의 출렁다리가 운영되고 있다.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서울과 대전 등 4곳을 뺀 13개 시도에 설치돼 있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시군에 1∼2개씩의 출렁다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가히 ‘출렁다리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렁다리 설치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입장료를 받지 않는 시범운영 기간만 찾아 다녀도 평생 돈 내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케이블카·출렁다리·모노레일’은 가장 기본적인 ‘관광시설물 3종 세트’다. 스카이워크도 빠질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절경지마다 설치된 관광시설이 되레 경관을 해치는 구조물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관광시설물을 만들다가는 멀지 않은 시기에 ‘동네시설’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호수 등을 가로질러 설치한 출렁다리는 관광객에게 짜릿한 스릴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물론 천혜의 경관을 만끽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주민들이 몰려드는 관광객을 체감할 수 있어 단체장 치적으로 알리는 데 유용하다. 이 때문에 단체장은 베끼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관광시설물 설치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베끼기가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앞다퉈 영어마을을 운영했다가 포기한 사례 등이 있다.

몰개성적인 베끼기 경쟁은 지역 특성을 고려한 창의적인 정책으로 지역을 발전시키자는 지자제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한다. 지자제를 도입한 지 31년이 됐지만 여전히 차별화보다는 획일적인 사업을 통해 안주하려는 구태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오는 6월1일은 지역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일꾼을 선출하는 날이다. 베끼기보다 지역에 맞는 관광상품 개발이나 지역 발전 동력을 찾으려는 인물을 뽑아야 세금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박연직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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