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괴물"..죽어서도 '반미의 칼'
[경향신문]
미 표적 살해된 솔레이마니
2주기 맞아 중동 긴장 고조
이란 대통령 “복수” 경고에
예멘의 친이란 반군 세력은
‘미 우방’ UAE·이라크 공격
“미국인 608명을 살해한 괴물이 죽었다.” “이란의 영웅이 사망했다.”
2년 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국의 드론 공습으로 암살되자 세계 각지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이어졌다. 그를 “괴물”이라 칭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더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그를 제거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순 없을 것”이라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이란 국민들은 솔레이마니의 사진을 흔들며 미국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이란 군부 실세였던 솔레이마니는 이란 내 2인자로 여겨질 만큼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인물이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란 내 시아파들이 봉기하자 솔레이마니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슬람 혁명수비대에 합류했고, 1980년에는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하며 이란 혁명세대의 선봉에 섰다. 1998년부터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인 쿠드스군 사령관을 20여년 지냈다. 그는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중동 내 친이란 무장조직을 지원하며 중동지역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서방은 그를 이란의 국제 테러 작전 배후에 있는 악독한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특히 미국 입장에서 솔레이마니는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존재였다. 2018년 이란 핵협정 파기 이후 미국은 대이란 경제 제재를 강화했고 이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렇게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될 때 솔레이마니는 미국에 맞서 중동지역 내 이란의 영향력을 지탱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눈엣가시였던 솔레이마니 제거를 고려한 바 있지만 이란과의 전쟁을 우려해 결국 작전을 승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솔레이마니를 “전 세계 테러리스트 중 1위”라 불렀던 트럼프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솔레이마니는 2020년 1월3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했다. 미국이 MQ-9 리퍼 드론을 활용해 미사일을 날려 솔레이마니를 표적 살해한 것이다.
이라크의 주권을 침해한 것은 물론 국제법까지 어기며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을 실행한 미국을 향해 국제사회는 비판을 쏟아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는 걸프에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는 걸 감당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러시아 외교부도 “솔레이마니를 미사일로 살해한 건 중동 전역에서 긴장을 높일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며 미국을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는 미국 외교관과 미군을 대상으로 공격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며 작전의 정당성을 두둔했다.
솔레이마니 사망 2주기를 맞아 중동의 긴장 수위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이란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가는 모습이 다시 연출됐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추모식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장관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지 않는다면 무슬림들은 순교자의 복수에 나설 것”을 다짐했고, 시민들은 이에 “미국 타도” “이스라엘에 죽음을” 등 구호를 외치며 호응했다. 하메네이는 트위터를 통해 “장군 솔레이마니보다 순교자 솔레이마니가 그의 적들에게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란은 전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미국과 이스라엘에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미국의 우방을 향한 공격도 속출했다. 예멘의 친이란 반군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선박을 나포하고, 무장 무인기 2대가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이 주둔한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복합단지를 공격했다.
다만 안보전문가들은 일련의 공격들이 ‘저강도 도발’에 그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정권이 바뀌었고, 역내 세력들의 적대행위를 중단하라는 압박도 커지고 있으며 숙적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관계 개선을 원한다며 손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과 그 우군 조직이 미국이나 미국 동맹국들과의 긴장 고조를 촉발하지 않으면서 솔레이마니 기일을 보낼 대응 수위를 조절하려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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