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감세에 쏠린 공약.."집 못 사는 사람 위한 정책 안 보여" [2016 촛불시민이 본 2022 대선 ②]

김윤나영 기자 2022. 1. 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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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향신문]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4일 내려다본 서울 송파구 일대에 빌라촌과 아파트 단지가 어우러져 있다. 경향신문이 표적집단 심층면접(FGI)을 진행한 ‘촛불시민’들은 치솟는 집값에 포기해야 했던 꿈들을 털어놓으면서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 주거권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을 주문했다. 강윤중 기자
문재인 정부 4년 반, 집값은 두 배로
전세난에 출산을 미뤘고
삶의 궤도를 바꿔야 할지 고민
“실수요자 박탈감이 이런 거구나”

“제일 실감 나는 건 부동산이에요.”

2016년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이호준씨(41·가명)는 ‘요즘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회문제’를 묻자 망설임 없이 집값을 꼽았다. 이씨는 2019년 5월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 전셋값 5억8000만원을 주고 들어왔다. 당시 아파트 단지 내 한 층 높은 집이 매매가 6억3000만원에 나왔다. 지금은 14억~15억원 한다. 그때 무리하게 빚을 내서라도 그 집을 샀다면 어땠을까 싶다.

이씨는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무섭다고 느낀다. 2015년 가을 전셋집을 구하러 다닐 때였다. 오래된 아파트가 전셋값 3억9000만원에 나왔다. 집 10채를 가진 다주택자가 갭 3000만원을 들여 투자한 아파트였다.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는 “불안하다. 깡통전세일 수 있다”면서 계약을 만류했다. 매매가에 비해 전셋값이 너무 높게 책정돼 나중에 전셋값을 돌려받을 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세 계약을 포기했지만, 깡통전세는 기우였다. 당시 4억2000만원이던 그 아파트 매매가가 지금은 12억원 한다. 그때라도 전셋집을 구하는 대신 아파트를 샀다면 지금 이씨의 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빚내서 집 사라’던 시절이었다. “2015년에는 몇천만원만 있으면 집 몇 채를 살 수 있었어요. 그땐 대출도 집값의 70~80% 정도 나왔거든요.”

이씨는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아주리라 기대했다. “이 정도 갭투자로 다주택자가 집을 계속 사들이는 건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잡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물론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변수도 있었다. 유동성이 늘어나 전 세계 집값이 다 뛰었다. 한국 부동산에도 거품이 생길 줄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오를지는 몰랐다.

이씨는 마음씨 좋은 집주인을 “운 좋게” 만나 한 번 계약을 연장했지만 2년 뒤가 걱정된다. 매매가가 오른 만큼 전셋값도 비례해 오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세대로라면 2년 뒤에는 집을 좁혀 이사해야 한다. 그는 친구들을 만나면 ‘나 벼락거지 됐다’고 농담하곤 한다. 더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꿈은 희미해졌다. “집값이 오르기 전에는 부동산 점프라는 게 있었다. 좁은 아파트에 살다가 대출도 받고 내 돈도 보태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점프를 할 수 없다. (세입자들은 2년 뒤엔) 지금 사는 집보다 더 못한 집으로 갈 수밖에 없다.”

■ “집값 올라 아이 낳을지 고민”

‘빌라거지’라는 말이
안 나오도록 아파트와
빌라의 위계를 줄여야 한다.

(한수진·가명)

아파트는 너무 비싸고
빌라는 방 세 칸짜리가 없다.
아이 낳고 키우기 힘들구나 싶더라.

(양희정·가명)

서울 강서구의 방 두 칸짜리 빌라에 사는 양희정씨(36·가명)는 같은 동네의 세 칸짜리 빌라로 조만간 이사한다. 전셋값을 2억1000만원에서 3억3000만원으로 높였다. 올해 태어날 아기를 위해 빚을 1억원 더 냈다. 계약한 집은 어렵사리 구했다. “아이가 있으면 방 세 칸짜리 집을 찾게 되는데, 아파트는 너무 비싸고 빌라는 방 세 칸짜리가 별로 없다. 아이 낳고 키우기가 힘들구나 싶더라.”

양씨는 요즘 집을 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낀다. 2년 전만 해도 전셋값 3억원이면 방 두 칸짜리 아파트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로또 같은 주택청약에 당첨된 적도 없지만, 청약제도는 “금수저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말했다. 집을 사려고 해도 “주택담보대출은 40~60% 정도밖에 안 되는데, 부부합산 연 소득이 7000만원 이하여야 정부가 제공하는 저금리 주택담보대출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부모가 집 살 돈을 보태준 사람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결혼 4년차 박지현씨(36·가명)는 집값이 올라서 자녀 출산 계획을 미뤘다. 박씨는 서울 서초구 방 두 칸짜리 빌라에 세 들어 산다. 아이를 키우려면 방 세 칸짜리로 넓혔으면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 지난해 1월 이사온 뒤 이 지역 빌라 전셋값이 1년 새 5000만~6000만원 올랐다. 2년 뒤 계약갱신청구권이 있다 하더라도 4년 뒤엔 어떨지 불안하다. 지금도 전셋값 2억4000만원 중 은행 최대 전세대출 한도인 1억9000여만원을 대출받았다.

최근 게임 앱 개발 사업에 도전한 박씨는 집값이 오르면서 삶의 궤도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젊었을 때 도전적인 일을 하고, 집은 나중에 여력이 될 때 사도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그때는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파트든 빌라든 가리지 않고 기회가 닿는 대로 빨리 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아파트에 대한 욕망 키운 정부

예전엔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빨리 집을 마련해야겠다.

(박지현·가명)

다주택자가 갭 투자로
집을 계속 사들이는 건
잡아야 한다.

(이호준·가명)

프리랜서였던 한수진씨(34·가명)는 전세대출에서 탈락할 뻔했다. 한씨는 2020년 11월 서울 중랑구의 방 세 칸짜리 빌라에 전세금 2억원을 주고 이사갔다. 한 달 동안 40군데 발품을 판 끝에 얻은 집이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저소득 신혼부부 전세대출 90% 지원사업에 지원하려 했다. 가계약을 마치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은행에 갔는데 처음에는 대출 승인이 거절됐다. 소득을 증빙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나랏일 하는 사람들은 고용형태가 단조로우니 특수고용직이나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이 각종 대출에서도 배제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2020년 프리랜서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기록이 은행에 남아 가까스로 대출을 받았다.

전세살이 1년이 지나니 “언제까지 계속 빌라에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저소득층에게 주거 현실은 더 냉혹하다. 무주택자가 집을 사는 비율보다 이미 집을 샀던 사람이 또 사는 비율이 높은 이유를 체감했다. “고작 현금 2000만원 가지고 2억원짜리 전셋집에 사는데, 주변에서 증여받지 않는 이상 내가 여기서 바로 아파트로 갈 수는 없는 거구나. 언론에서 얘기하는 ‘실수요자의 박탈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촛불시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2017년 5월 출범 이후 정부는 총 24차례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 문재인 정부 4년 반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평균 두 배 넘게 올랐다. 집 없는 시민 44%가 직격탄을 맞았다. 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어 혼란만 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수진씨는 정부가 좋은 의도로 시행한 정책도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온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선한 의도로 임대사업자를 양지화하려고 세금 특혜를 줬지만, 결과적으로 다주택자의 갭 투자를 양산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박지현씨는 “정부가 집권 초반에 뭘 믿고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정부가 약속했던 공정한 세상이 지켜지지 않아 실망했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차기 정부의 최우선 정책과제로 꼽았다. 이호준씨는 “(부동산 문제에서) 잘못된 부의 분배를 바로잡을 의지가 있나, ‘과정은 공정하고, 기회는 평등하고, 결과는 정의롭게’에서 그 결과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과 의지가 있는지가 이번 대선의 키워드”라고 말했다.

후보들 앞다퉈 정책 예고 했지만
주거권 철학과 일관성은 부족

■ “집 없는 사람 위한 정책 있어야”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부동산 정책 수정을 예고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유예, 공시지가 현실화 전면 재검토,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공약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종부세 전면 재검토, 양도세 완화, 취득세 인하를 제시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의 최저주거기준 상향, 공공주택 20%로 확대, 임대료 5% 상한제, 보유세 강화, 양도세 비과세 제한을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1주택자 취득세 인하, 무주택자 대출 규제 완화 등을 제시했다.

후보들의 원칙 없는 부동산 감세 경쟁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수진씨는 윤 후보의 종부세 전면 재검토 발언에 대해 “국민적 합의에 따라 십수년간 종부세가 유지됐는데, 사회적 합의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호준씨는 “부동산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예전에 할 수 있던 정책들을 지금 하려 한다면 중산층과 서민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면서 “어설픈 핀셋 정책을 하다가는 폭탄 돌리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희정씨는 “주택 가격이 안정됐으면 좋겠지만, 정책에 일관성도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수진씨는 “아파트에 못 들어가는 사람을 위해 빌라를 더 좋게 만드는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모두가 로또 청약을 꿈꾸게 함으로써 주거복지 정책의 공공성보다 투기적 이익을 찬성하는 시민이 더 많아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면서 “‘휴먼시아 거지’, ‘빌라 거지’라는 말이 안 나오도록 아파트와 빌라의 위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양희정씨는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지현씨는 무주택자에게는 대출 규제를 완화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최창우 집걱정없는세상 대표는 “대선 후보들에게는 ‘주거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면서 “모든 사람에게 소중한 보금자리가 갖춰져야 하고, 집은 한 채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다주택자의 불로소득을 줄이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 후보의 ‘억강부약’, 윤 후보의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말이 진정성을 얻으려면 두 후보 모두 지하·옥탑방·고시원·쪽방촌에서 고통받는 세입자들을 위한 주거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향신문은 2016년 11월~2017년 3월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 18명을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각각 표적집단 심층면접(FGI)을 진행했다. 한국 사회 핵심 의제인 ①청년 실업 ②부동산 ③자영업 ④비정규직 문제의 당사자들을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했다. 의제마다 4~5명씩 나눠 청년들의 취업난 고충을, 집 없는 사람들의 부동산 이야기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의 애환을,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서러움을 들었다. 18명 모두 평범한 시민들이다. 이들 중엔 30군데에 지원서를 낸 끝에 가까스로 취업한 사회초년생이 있다. 집값이 올라 아이 낳기를 포기할지 고민하는 신혼부부가 있다. 돈이 없는 손님에게 8000원만 받고 1만2000원짜리 피자를 몰래 포장해준 피자가게 사장이 있다.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도 공정 담론에서 제외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정치란 평범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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