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학원·독서실 방역패스 효력 정지.."학습권 침해"
[경향신문]
방역패스(백신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학원과 독서실 등 교육시설에도 적용한 정부 정책에 대해 법원이 일시 정지 결정을 내렸다. 방역패스를 둘러싼 갈등과 관련해 백신 미접종자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첫 판단이다. 이번 결정이 모든 시설의 방역패스 효력을 따지는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줄 지 주목된다. 정부는 “항고 여부를 조속히 결정하겠다”고 했다.
■“교육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 직접 침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는 4일 함께하는사교육연합·전국학부모단체연합 등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교육시설 방역패스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의) 처분은 사실상 백신 미접종자 집단이 학원·독서실 등에 접근하고 이용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미접종자 중 학원·독서실 등을 이용해 진학·취직·자격시험 등에 대비하려는 사람은 학습권이 제한돼 사실상 그들의 교육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직접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어 “백신 미접종자라는 특정 집단의 국민에 대해서만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불리한 처우를 하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백신 접종자의 이른바 돌파 감염도 상당수 벌어지는 점 등에 비춰보면 시설 이용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백신 미접종자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크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코로나19 치료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 백신이 적극 권유될 수 있지만, 그런 사정을 고려해도 미접종자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존중돼야 하며 결코 경시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코로나19 감염이 일부 건강한 사람도 위중증에 이르게 하지만, 고위험군과 기저질환자 등이 상대적으로 위중증률과 치명률이 높게 나타난다”며 “청소년의 경우 중증이나 사망에 이를 확률이 현저히 낮다”고 했다.
정부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3종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은 본안 판결 시까지 중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본안 소송을 신속히 진행하고, 법원의 집행정지 인용 결정에 대해서도 법무부와 협의해 항고 여부를 조속히 결정하겠다”고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해 12월3일 특별방역대책의 후속 조치로 청소년 방역패스를 내놓았다. 청소년이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 등을 이용하려면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했음을 증명하거나 48시간 이내 PCR 음성 확인서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3월부터 2009년 12월31일 이전 출생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역패스를 적용키로 했다. 3월 한 달간 계도기간을 거쳐 4월부터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이에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달 17일 “방역패스 정책이 사실상 청소년 백신접종을 의무화하고 신체의 자유, 학습권 등을 침해한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학원·스터디카페 이용 성인에 대한 방역패스는 즉각 효력 정지
이번 결정으로 보건복지부가 내린 특별방역대책 후속조치 중 학원 등과 독서실, 스터디카페를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로 포함한 부분은 행정소송 본안 1심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효력이 정지된다. 학원 및 이와 유사하게 운영되는 교육시설·직업훈련기관 등이 대상인데, 여기에는 청소년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다니는 학원 외에도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취직·자격시험 학원도 포함된다.
청소년 대상 방역패스는 3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본안 소송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에 따라 이번 결정의 의미와 파장이 달라진다. 성인이 학원·스터디카페 등을 이용할 때 방역패스를 제시하도록 한 조치는 이날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이번 결정이 방역패스 전체를 둘러싼 개별 소송에 어떤 영향을 줄 지도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한원교 부장판사)는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1023명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질병관리청장 등을 상대로 낸 방역패스 처분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심문기일을 오는 7일 진행한다. 교육시설뿐 아니라 모든 시설의 방역패스 효력을 다루는 사건이다. 효력정지가 결정되면 마트나 백화점, 식당 등 일상생활 전반을 방역패스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법원은 이날 교육시설 방역패스 효력정지를 결정하면서 정부가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 방역 당국이 자발적인 백신 접종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는데, 이는 교육시설뿐 아니라 다른 시설에도 적용할 수 있는 논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결정은 직업선택의 자유나 교육의 자유와 직결되는 교육시설이라는 특수성도 고려했다. 또 법원은 각 재판부가 서로 독립해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실상 성격이 같은 사건을 두고도 재판부마다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노벨상 작가 한강 ‘만성 적자’ 독립서점 지키는 이유
- 경찰청장 “김건희 여사 시찰 때 마포대교 통제는 없었는데···”
- [스경X이슈] 이진호 불법 도박 자수에 소환된 김용만·양세형…★불법도박의 역사
- 대통령실 “외통수 걸렸다”···김건희 겨누는 한동훈에 난감
- 인기 끌자 너도나도···예능·드라마에서 무슨 냄새 안 나요?
- 태국 온라인 다단계 피해 740명으로 확대…피해자 자살도
- 명태균 “김 여사가 인수위서 면접 봐달라 했다···대선 전 아침마다 스피커폰 전화”
- [영상] 갯벌이 온통 썩은 바지락···축구장 900개 규모 ‘서산 가로림만’에 무슨 일이
- 뇌가 만든 ‘술 센 사람’, 음주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 태양이 준 아름답지만 달갑잖은 선물…‘초강력 지자기 폭풍’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