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견을 듣는다] "尹, 내 토론 제안에 응한다면 회피한다는 李 공격 피할 수 있을 것"

이규화 2022. 1. 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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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지지율 추락은 기득 정당에 대한 실망.. 공유 부분 있는 내가 도와줄수도
기득권 양당 구조로 대한민국 문제 못 풀어.. 국무총리 거절하고 옳은 길 가는 것
2년 반 전국 다니면서 농어민·소상공인·청년 만나.. 공직 34년보다 더 많이 배워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 고견 인터뷰.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전 경제부총리

"후보 토론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와 토론합시다. 어떤 주제도 어떤 형식도 좋습니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는 지난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윤 후보에게 토론하자고 파상공세를 펴던 때다. 윤 후보는 "(대장동 사태의) 확정적 중범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후보와 국민들 앞에서 토론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장동과 백현동의 진상부터 밝히고 음습한 조직폭력배 이야기 그걸 먼저 밝히라"며 공세를 되받아쳤다.

그런데 윤 후보가 이 후보에 비해 지지율에서 역전되고 격차가 벌어져 심각한 자중지란에 빠진 현재 김 후보의 제안에 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후보의 의혹 때문이지 토론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고, 또 윤 후보로서는 전혀 손해 볼 '거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질과 능력이 의심받고 있는 윤 후보로서는 그것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김 후보와 토론을 가짐으로써 의구심을 덜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지율 빼고 다 갖췄다'는 김 후보에게도 시선을 모아주게 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곱씹어볼수록 김 후보의 그 제안은 윤 후보에게는 꽤 괜찮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윤 캠프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이 제안을 김 후보가 밝힌 것은 지난달 30일 인터뷰하러 캠프 사무실에 막 들어설 때였다. 닷새가 지난 4일 현재 윤석열 후보 캠프는 그야말로 해체 수준이 됐다. 윤 후보의 지지율은 새해 들어 발표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에 뒤진다. 윤 후보는 이틀째 활동을 접고 고심 중이다. 전략적으로도 김동연 후보와 토론회를 통해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통해 '콘텐츠 부족'이란 오해를 털어낼 수도 있다.

김 후보는 4일에도 토론회 제안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시장의 자유와 양극화 해소, 안보 측면 등에서 저와 윤 후보는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며 "국민에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면 미디어를 통한 토론회에서 왜곡을 시정하고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전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을 시험으로 뽑으면 자신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성인군자가 유리한 것도 아니다. 지금 대선후보들 지지율이 반증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두 후보와 그 가족과 관련한 의혹이 잇따라 터지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니잖아' 하는 반발심이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가족 뿐 아니라 본인의 전과기록, 대장동 개발 특혜·비리 의혹과 관련한 합리적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정황을 갖고 있다. 그런 후보가 지금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렇게 대선판이 심란한 와중에 김동연 후보로 고개를 돌리면 우선 갑갑함이 확 사라진다. 비토할 거리를 찾을래야 찾기 힘든 깨끗한 개인사, 충북 음성 깡촌과 청계천 판잣집에 살던 상고 출신의 그야말로 흙수저에서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등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관료 자리에 오른 성공스토리는 그 자체로 정책이고 공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후보는 2018년 12월 경제부총리를 내려놓았을 때 여야 모두로부터 차기 대선 후보 영입 0순위였다. 국무총리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뿌리치고 3년간 국민 삶 속으로 들어가는 '전국 주유'를 택했다. 지난달에야 '새로운물결' 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뛰어들었다. 지금 지지율은 미미하다. 정치 입문을 좀더 일찍 하지 그랬냐는 주변의 아쉬움이 있지만, 본인은 전혀 아니다.

김 후보는 "총리가 되고 기존 정당에 들어가 정치를 하는 것은 쉬운 길이었지만 옳은 길은 아니었다"며 "지금 비록 출발은 초라하지만 정치교체를 위한 옳은 길을 간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서울 당산동 김동연 후보 캠프에서 가졌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배경 백드롭에 써 있는 '기득권 공화국에서 기회 공화국으로'라는 슬로건을 국민의힘에서 후보님 것을 무단 차용했다고 하셨는데, 사용료 받으셨습니까.

"(웃음) 못 받았습니다. 남이 썼던 것을 의식도 없이 가지고 간 건데, 뭐라고 할까, 깊은 철학이나 생각이 있겠습니까."

-딱 들어오는 말인데, 후보님은 어디에서 그렇게 아이디어가 샘솟습니까.

"오래 전부터 '기회의 공화국'을 생각했었어요. 최근에 제가 쓴 책(대한민국 금기 깨기)도 기회의 공화국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를 묶었는데, 제가 모두 직접 썼습니다. 2년 6개월 동안 6번을 퇴고를 했어요. 한번은 80%까지 쓴 걸 다 버리고 새로 썼으니까요. 거기서 나온 철학인데 남이 써준 거 가지고 쓴 분이 그 뜻을 알겠습니까."

-'유쾌한 반란'이란 말도 후보님이 만든 말이지요. 훌륭한 카피인 거 같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제가 만들었습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때 만들었어요. 사고 방식도 바꾸고 예산 편성 방식도 바꾸고 우리 한 번 바꿔보자. 반란을 일으켜보자 그랬거든요. 그런데 공직자가 반란이라는 말을 쓰는 게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 '유쾌한 반란'을 생각했습니다. 기분 좋게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반란 말입니다. '유쾌한 반란'이란 말은 제가 상표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후 유쾌한을 넣어서 많은 패러디가 나온 것 같은데요.

"엄청 많이 나왔어요. 제가 아주대 총장 갈 때 취임사 제목도 유쾌한 반란이었습니다. 학교를 한 번 유쾌하게 뒤집어보자고 했지요."

-'파란학기'라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던 데요.

"아주대학교 교색이 파란색이에요. 그리고 파란이 알을 깨자, '깨뜨릴 파 자에 알 란'이잖아요. 헤세의 작품 '데미안'에서 또 다른 세상을 얻기 위해서는 알을 깨야 한다고 하는 걸 딴 거고요.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대학 사회에 파란을 일으키자는 뜻을 담고 있어요. 중의적입니다. 그 다음에 또 저희가 한 프로 중에 '에프터유(after you)'도 있습니다. 영어로 양보한다는 말이잖아요. '먼저 하십시오'라는 뜻에서 에프터유인 거죠."

-부총리 그만 둘 때 각 당에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인재영입 0순위에다 국무총리 제안까지 받은 걸로 아는데, 다 거절하고 뒤늦게 이렇게 어려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편안한 길이 있는데 왜 힘든 길을 선택하셨나요.

"'해리포터' 책에 보면 이런 유명한 대사가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쉬운 길과 옳은 길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될 때가 있다.' 총리 제의 받아서 했다면 제가 총리가 됐겠죠. 또는 총선에도 나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어떻게 보면 저에게는 쉬운 길이죠. 그런데 옳은 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을 때 대부분의 옳은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앙드레 지드가 '좁은 문'에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좁은 문으로 그렸는데, 쉬운 길이 꽃길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진짜 대한민국의 문제가 무엇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부터 해야 될까. 그러려면 쉬운 길로 가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는 말씀이군요.

"정치개혁, 정치의 세력 교체, 정치 교체를 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이런 정치, 즉 기득권 양당 구조, 기득권적 제3지대 구도로 가서는 대한민국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총리도 거절하고 이렇게 어려운 길, 옳은 길을 가는 겁니다."

-보통사람으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기득권 내려놓기네요.

"저부터 기득권 내려놓자 다짐했습니다. 부총리 그만두고 이제 3년 좀 더 됐습니다. 그 2년 반 동안 전국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정치할 목적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삶의 현장도 보고 농민들 애환도 듣자고 했어요. 어민들 만나 어촌 가서 여러 날 잤어요. 그분들 얘기 들어보고 또 소상공인 자영업자 청년들 얘기 들으면서 대한민국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공직 34년 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그 2년 반 동안 다니면서 느끼고 배웠던 것들이 많았거든요."

-어디 어디를 다니셨나요.

"전국 여러 군데를 다니고 여러분한테 들었습니다. 거제 어촌 마을, 다대 어촌 마을, 밀양 산내면 얼음골 사과과수원에도 갔었고, 전남 강진의 다산 선생 첫 유배지 이런 데는 매년마다 가서 만났어요. 농민이든 어민이든 소상공인이든 만나보면 그분들이 금방 아세요. 만나서 이삼십 분만 얘기해보면 '이 사람이 그냥 사진 찍으러 온 거구나' 아니면 '진정성을 가지고 온 거구나' 하는 것을 아세요. 거제 다대마을 갔더니 거기 어촌 계장이 그러시더라고요. '우리와 같이 이 방에서 자고 간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요.' 제가 매년 갈 때마다 거기서 잤거든요. 여수 암포마을에서는 새벽에 배 타고 나가 멸치잡이를 했어요. 거기서도 하루 잤어요."

-어민들 삶 속으로 들어가신 거나 다름없네요.

"거기는 새벽이 아니라 밤 10시에 나가서 전어 잡이 그물을 끌어당겨요. 그것도 같이 하고 그러니까 이분들이 너무 좋아하세요. 새로운물결 당을 만드는데 그분들에게 제가 정치 얘기도 안 하고 당원 얘기도 안 했는데 그분들이 찾아 오셨어요. 그런 분들이 지금 당원입니다. 지금 새로운물결 당원 분들이 거의 다 그런 분들이에요. 우리 당에는 농민 어민 소상공인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교수도 있고 다양하게 있습니다만, 아직 정치인은 없습니다. 앞으로는 기존 정치인 분들도 저희가 좀 모셔와야죠."

-문재인 정부 초대 부총리 1년 6개월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걸로 압니다. 내각의 경제사령탑이지만 당시 정책 방향은 청와대에서 좌지우지 했잖아요.

"당시 청와대에 장하성 정책실장과 홍장표 경제수석이 있었지요. 그런데 제가 그만 두고 제가 하자고 한 것들 중에 안 한 것들만 나중에 따라하더군요. 제가 최저임금 급격히 올리는 건 안 된다고 했어요. 저 그만두고 나니까 2.9%(2020년), 1.5%(2021년) 올렸어요. 그럴 것 같으면 제가 처음 주장한 것처럼 적정한 인상률로 갔어야 됐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이렇게 일관되게 가지 왜 그때 16.4%(2018년), 10.9%(2019년)로 급격히 올리느냐 그겁니다."

-청와대와 달리 기업 친화적인 혁신 성장도 주장하셨는데요.

"제가 대기업들 끌어안고 혁신 성장의 파트너다 그랬더니 저 보고 삼성에 가지 말라고 해요. 그랬는데 제가 강의를 갔거든요. 그랬더니 후에 다 갔어요. 대통령도 가고 총리도 가고, 다 갔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대책도 '공급대책 빠졌다, 규제 일변도는 안 된다. 정치 이념 가지고선 안 된다' 했는데, 지금 공급 대책 낸다고 온 난리고 심지어는 이재명 후보는 얼마 전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유예하자 그랬거든요. 그거 제가 하자고 그랬거든요. 제가 공급이 나와야 된다, 다주택자들 문을 열어줘야지 물건이 나온다, 그랬더니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른 부동산 가격의 이익 실현을 하는 건데 그 불공정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하겠냐 말이죠."

-그 때 부총리 말씀만 들었어도 오늘날처럼 집값이 폭등하진 않았을 텐데요.

"시장 경제에서 부동산 시장이 제대로 작동을 하게 해야 되는데, 그래서 다주택자 2주택자는 20% 중과하고 3주택은 30% 중과하는데, 제가 2년 동안 유예하자 했어요. 2년 동안 물건 나온다. 그거 가지고 가장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제 의견을 안 받길래 제가 끝까지 주장을 했더니 그 보고하는 자리에서 배석했던 비서관 중에 한 사람이 '부총리가 대통령한테 항명하는 거요?' 이런 얘기까지 했어요. 그런 식으로 제가 했던 건데, 그러니까 뭐 최저임금 그렇죠, 그 다음에 기업이나 산업 정책 그렇죠, 그 다음에 부동산 정책 그렇죠, 전부 그 후에 하는 거 보면 제가 현직 그때 주장했던 내용들입니다."

-생각할수록 아쉽네요.

"제가 얘기했던 대로 했더라면 부동산 가격이 이 정도까지는 안 올랐을 거라고 봐요. 물론 넘치는 유동성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은 있었겠지만요. 임금도 제가 얘기한 대로 그렇게 급격히 올리면 고용에 영향이 있고 시장의 수용성을 넘는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합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겐 비용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4분의 1입니다. OECD 2배거든요. 그럼 감당 못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평균적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임기 중에 올린 최저임금이 민주화 이후 정부 가운데 하위 두 번째입니다. 처음에 2년 동안 30% 올랐거든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제 얘기를 들었더라면 경제나 부동산 이렇게 안 됐을 거고요. 사실은 제가 아주대 총장 하는데 부총리 제의가 왔는데 처음에 거절했어요. 공식적으로 다시 안 하겠다고 그랬더니 그때 다시 재차 연락이 와서 노무현 정부 때 만든 '비전 2030'이라는 보고서를 제가 만들었는데 우리 캠프에서 그 보고서가 바이블이었다. 그런데 그 저자가 김 총장이신데 이제 그걸 실천에 옮겨야 될 거 아니냐, 제가 그 말 듣고…."

-그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나 여권과 접촉이 있었나요.

"부총리 되기 전에 대통령을 한 번도 본 적이 전 없어요. 전화 통화한 적도 없습니다. 청문회 며칠 앞두고 만나서 제가 대통령께 세 가지 얘기했습니다. 하나는 경제는 제가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두 번째는 소득주도 성장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의 모든 것인 것처럼 돼있는데 이걸 고쳐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혁신성장 포함해서 소신껏 얘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정기적으로 직접 보고하게 해 주십시오. 대통령이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그러셔서 며칠 뒤에 있는 청문회에 가서 제가 답변을 하는데 혁신성장력을 강하게 했고, 그때 청문위원들이 왜 부총리는 모두 발언부터 답변하는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을 한 번도 안 쓰냐고 그랬어요. 대신 사람 중심 투자로 바꿨어요. 왜냐하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이 제가 볼 때는 네이밍이 잘못됐어요. 네이밍이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일부는 맞죠. 소득만 늘려서는 성장 안 됩니다. 소비 투자 혁신이 일어나야 하는 거고 두 번째는 용어 자체가 프레임 논쟁을 만들어요. 이게 정쟁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이건 아닙니다, 해가지고 했는데 그 외는 저도 그 말을 쓰긴 썼습니다만 어쨌든 청문회에서 제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안 썼어요. 그랬더니 야당 의원들도 왜 부총리가 그 말 안 쓰냐고 에둘러 비판도 하고 그렇게 했었죠."

-청와대 주도 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셨잖아요. '청와대 정부'를 고쳐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밝힌 공약 중에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공약입니다. 쓴 책에서도 청와대 정부를 깨야한다는 얘기를 했거든요. 왜 이런 문제가 생기냐면 예를 들어서 문재인 정부가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하면 지금 정권이나 지금 대통령의 문제일 거예요. 그런데 청와대 정부 문제는 모든 정부에서 다 있어 왔습니다. 이건 제도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자, 그리고 책임 총리 도입하고 내각에서 책임지고 일할 수 있도록 개헌을 주장을 하는 겁니다. 플러스 의회 권력 개편, 선거법 바꾸자, 국회의원 특권 없애자, 면책 특권 없애자, 국민소환제 도입하자, 3선 초과 못하게 하자, 그리고 정치가 직업이 아니라 봉사로 하게 하자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을 매력적인 직업으로 만들지 말자, 이건 봉사하는 자리다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개헌 동력이 많이 떨어져 있거든요.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저는 개헌에 방법을 제시했다는 겁니다. 지금의 개헌 방법으로는 현실적으로 개헌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3분의 2, 20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찬성을 해야 되고 국민 투표까지 가야 되는데 이번 정부에서도 개헌안을 냈는데 제대로 논의도 안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장한 거는 내년에 새로 뽑히는 대통령이 '헌법개정국민회의'를 소집하자는 겁니다. 법을 새로 만들어야 되겠죠. 그러면 3월에 선거니까 6월 지방선거 때 지역별 권역 대표로 해서 정당이 추천해서 국민회의를 구성하자, 국민의 임기는 1년 그러니까 한시적인 겁니다. 거기서 1년 안에 헌법 개정안 합의를 보자, 1년이란 시간을 딱 정해놓고요. 그게 정해지면 국회 절차 거치고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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