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당연했던 무대 공연… 코로나 후 예술의 소중함 깨달았죠” [세계초대석]
2021년 4월 첫 지방공연 열며 눈물 펑펑
‘호두까기인형’ 전석 매진 행렬에 행복
출연진 320명 매주 PCR검사 하며 조심
창단 36년 만에 2021년 연습실 석달 닫아
무대 서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서로 배려
단원들, 수입 끊겨 정부 지원금으로 버텨
‘예술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 늘 강조
한 시간 남짓 인터뷰 동안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은 두 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예술의 소중함, 그리고 단원을 향한 애틋함과 고마움을 말하다 울컥한 것. 결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이다. 그럼에도 국내 최대 규모인 세종문화회관에서 ‘호두까기인형’ 전석 매진 행진으로 2021년을 마무리한 문 단장은 지난달 24일 공연을 앞둔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역설적으로 입증한 예술의 가치와 당위성을 강조하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호두까기인형’은 연말 인기 레퍼토리인데, 2020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무대를 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지난 연말은 공연할 수 있었고, 그것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는데 감회가 궁금합니다.
“다른 단체 공연이 확진자 발생으로 취소되는 상황을 보면서 정말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해야했습니다. 출연진들에게 ‘정말 너무너무 죄송하지만 공연 끝날 때까지만큼은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자. 그리고 가족과 식사할 때 반찬도 덜어서 먹어달라. 그렇게 조심하자’고 부탁했을 정도예요.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포함해 출연진이 320명쯤 되는데 매주 전원 PCR 검사를 했죠. 저도 그렇지만 단원들도 엄청나게 부담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관계자는 “심지어 함께 사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 임시 숙소를 구한 무용수도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모두가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 예술단체가 그중에서도 피해가 큰 것 같습니다. 어떻게 코로나19 2년차를 보냈나요.
“대유행 첫해부터 거의 9개월 동안 모든 공연을 취소하다가 지난해 4월에야 첫 지방공연을 했어요. 단원 10명 정도가 무대에 오르는 작은 공연이었는데 내내 울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만 들어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었어요. 평생 예술을 하고 있었지만 ‘이 세상에 문화·예술이 왜 필요한지’ 그날처럼 깊이 깨달은 적이 없었던 거였어요. 눈물이 계속 흐르는데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매회 2000여석이 매진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그토록 이 어려운 시기에 많은 이들이 ‘호두까기 인형’을 줄 서서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은 스타가 된 김기민과 박세은처럼 유니버설발레단은 오래전부터 뛰어난 무용수는 굳이 군무를 거치지 않았더라도 주역을 시켰습니다. 게다기 우리가 운영하는 유니버설주니어 컴퍼니가 5년째 접어드니 정말 뛰어난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우리가 세우고 싶어도 아무나 못 세우잖아요. 충분히 주역하고도 남는 실력을 갖고 있으니 본인과 발레단 모두를 위한 선택인 거죠. 어린 꿈나무는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고, 우리도 다양한 무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은 단장님의 무대 해설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입니다. 또 공연 전후나 휴식시간에 로비에서 격의 없이 관객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매번 그런 시간을 갖는 게 힘들지는 않은가요.
“창단 36년 만에 처음으로 연습실 문을 거의 3개월 동안 걸어 잠갔습니다. ‘연습을 하루만 쉬면 내가 알고, 이틀 쉬면 선생이 알고, 사흘 쉬면 세상 모두가 안다’는 게 무용수 세계인데 현역 무용수들이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그걸 겪으면서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니고 감사한 것’이란 걸 깨달았죠. 그런 시절을 겪으니 단원들도 그냥 무대에 설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서로를 배려하게 됐습니다. 특히 정부에 너무 감사한 게 공연이 모두 취소되면서 수입원이 없어졌잖아요. 그때 정부 지원금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지난해를 넘기기 어려웠어요. 또 지원을 받으려면 발레단 문을 완전히 걸어잠그는 휴업 조치에 단원들이 동의해줘야 하는데 협조해줘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정부 지원금 아니었으면 경영이 힘든 정도였나요.
“‘예술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 예술이 나를 위해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죠. 자신의 욕심을 위해 예술을 하면 안 된다 는거죠. 그 마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또 한국 무용수는 주로 테크닉 위주로 단련되다보니 외국 출신 단원에 비하면 표현력이 약해요. (직접 ‘호두까기인형’의 클라라가 잠에서 깨어나는 동작을 해보이며) 이렇게 클라라가 잠에서 깼어요. 그러면 꿈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데, 그 동작 뒤에 생각 없이 텅빈 동작만 하는 거예요. 이걸 왜 하는지 보이지 않아서 제가 그걸 왜 하는지 물어보죠. 추상작품이 아닌 한 표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늘 강조를 해요. ‘이유 없이 기쁘고 이유 없이 슬퍼보이는데 그러면 안 된다. 관객에게 네 생각을 보여줘야 해’라고 강조하죠.”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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