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프리즘] 4·3, 화해와 상생을 위해

허호준 2022. 1. 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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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제주4·3추모식에 참가한 한 유족이 희생자 이름이 새겨져 있는 각명비 앞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허호준 기자

허호준 | 전국팀 선임기자

올해부터 제주4·3 희생자 보상금 지급이 가시화된다. 국가폭력 희생자들에 대한 정부의 보상이 74년 만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4·3을 특집기사로 다뤘던 일본 언론 등 외신들은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한국 사회의 민주화의 진전에 발맞춰 나아갈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만큼 국가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인정하고 보상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은 우리 사회 민주화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것이자 과거사 해결의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폭동’과 ‘반란’으로 매도되던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은 40주년을 맞은 1988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제주4·3특별법 제정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아 보였다. 4·3 관련 서적을 펴낸 이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고, 정보기관과 극우 인사들의 날카로운 시선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을 옥죄었다.

그러나 뜻있는 작은 목소리들이 합쳐져 거대한 울림이 됐고, 유족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국민적 합의 속에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진상조사와 명예회복 운동은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과거사 관련으로는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오고 총리실 산하 제주4·3위원회의 희생자 결정이 속속 이뤄지게 됐다. 공동체 보상 차원에서 4·3평화공원이 조성됐으며, 유해발굴 사업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재판 때마다 눈물바다를 이룬 법원에서는 군사재판은 물론 일반재판 수형자 재심이 받아들여져 350명이 넘는 관련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지난해 2월에는 20여년 만에 여야 합의로 4·3특별법이 전부 개정돼 4·3 문제 해결에 추진력을 더했다. 대검찰청은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을 조직해 4·3 당시 군사재판 수형인들에 대한 집단 직권재심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추가 진상조사도 시작된다. 예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됐다.

올해 시작할 4·3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은 4·3 문제 해결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4·3 관련 보상금 지급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가운데 최초의 입법적 보상으로서, 여순사건을 비롯한 다른 과거사 문제 해결의 모델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4·3특별법 제정 이후 과거사 해결은 20여년 전 시대적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더디지만 정의로운 방향으로 진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4·3특별법에 따라 4·3위원회가 희생자 심사·결정을 시작할 당시의 희생자 선정 기준에 갇힌 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유족들이 있다. 4·3특별법에는 4·3 당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후유장애를 입거나 수형 생활을 한 사람들을 희생자로 정의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아버지나 남편이 ‘무장대’ 활동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유족들은 희생자 신청을 했다가 거부되거나 철회를 강요당하는가 하면 미리 거부될 것을 예상해 아예 신청하지 않기도 했다. 4·3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이 진전될수록 이들의 트라우마는 더 깊어지고 있다 .

‘화해’와 ‘상생’은 과거나 지금이나 4·3 문제 해결의 전제이다. 정부는 물론 언론과 정치권, 유족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4·3을 언급할 때면 화해와 상생을 말한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한겨레> 기고(2021년 12월28일치 29면 보도)에서 “과거사 정리를 통해 대립과 반목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화해와 통합의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와 같이,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끊어내고 진정한 화해와 상생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70여년 동안 얽매어온 이들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 20여년 전 잣대로 이들에게 냉전시대의 유물이나 다름없는 ‘폭도의 자식’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기에는 우리 사회가 성숙해 있지 않은가. 부친이 희생자로 인정되지 못한 한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화해와 상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모두를 포용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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