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진과 김경남이 그려가는 멜로의 색다른 서사('한 사람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1. 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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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만'에 드리워진 청춘들의 절망과 연민

[엔터미디어=정덕현] 우천(김경남)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 부끄러워한다. 그건 인숙(안은진)을 만나고 나서다. 그를 잃을까봐 무서워졌고 그래서 자신이 그렇게 살아온 날들이 후회되고 부끄러워졌다. 그런 그에게 루게릭 환자 문영지(소희정)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된 거지. 좋은 사람이네. 나쁜 짓 한 걸 후회하게 만든 사람을 만난 거잖아. 그게 사랑 아냐?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 서로 그렇게 만드는 거."

JTBC 월화드라마 <한 사람만>은 멜로드라마다. 우천과 인숙의 사랑을 다룬다. 그런데 그 사랑은 처절하고 절망적이다. 보는 이들의 연민을 자아낸다. 그냥 불꽃처럼 튀는 풋풋한 사랑이 아니라, 삶 전체의 무게를 걸고 죽음 앞에서 겨우 겨우 마주하게 된 사랑이다. 동반 자살을 시도한 부모와 더불어 죽을 뻔 했던 우천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삶을 살아간다. 원했던 삶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청부살인을 하는 밑바닥의 삶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피폐된 삶이다.

인숙의 삶도 마찬가지다. 부모에게 버려진 후 할머니 육성자(고두심)의 보살핌 아래 살아왔다. 그러다 덜컥 뇌종양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할머니에게 싱가포르 여행을 떠난다 거짓말을 하고 호스피스에 들어와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려 한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옆집 아이 하산아(서연우)를 구하기 위해 '한 사람만' 죽이겠다 결심한다. 어차피 죽을 삶이니.

우천도 인숙도 벼랑 끝에 서 있는 삶이다. 그런데 그 둘은 질긴 인연으로 엮어져 있다. 어린 시절 차 안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우천을 구해준 게 바로 어린 인숙이었다. 그 인숙을 단번에 알아본 우천은 그를 마음에 담는다. 그건 그저 첫눈에 반했다는 그런 사랑이라기보다는, 한 평생 별 의미도 가치도 없이 살아온 삶에 무언가를 해주고픈 사람이 나타난 그런 사랑이 아닐까. 우천은 의미 없는 자신의 삶에서 유일한 의미로서의 단 한사람, 인숙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천의 정체가 사실 살인청부업자였다는 걸 알게 된 인숙은 그에게 "무섭다"고 말한다. 그 말은 비수처럼 우천의 가슴을 파고들지만, 우천은 사람을 죽이고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눈을 뜨고 그랬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인숙은 사람을 죽이는 건 무언가를 잃는 것이고 뚫린 것처럼 비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천에게 "너는 얼마나 잃었을까"를 묻는다. 인숙이 무서운 건 그렇게 잃는 것들을 반복해온 우천이 아무 것도 없어진 사람일까 싶어서다.

"아무 것도 없었어. 그래서 어쩌면 악착같이 그 이유를 찾았는지도 몰라. 얼마나 나쁜 놈인지 얼마나 죽어 마땅한 놈인지 샅샅이 뒤지면서 이유를 찾았어. 그런데 그래도 결국은 사람을 죽인 거야. 내가. 눈을 가진 사람을. 그래서 너무 무서워. 어떻게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게,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게, 이런 내가 널 좋아하면 안 된다는 게, 이런 나는 너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게."

결국 우천이 인숙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길은 인숙이 저지른 살인(산아를 구하기 위한 일이었지만)을 자신이 뒤집어쓰는 것이다. 그는 형사들 앞에 나아가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증언한다. 그렇다면 인숙은 이런 우천을 그냥 놔둘까. 자신이 실제로 저지른 살인이고 또 어차피 죽을 시한부 인생인데다 적어도 우천의 절망적인 삶과 그 선택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자신이 살인자라 나서지 않을까.

<한 사람만>이 그리는 비극이 슬픈 건, 어쩌다 이들의 사랑하는 방식이 서로가 진짜 살인자라고 증언하는 그런 방식이 되어버린 현실 때문이다. 어찌 보면 '죽어 마땅한 인간'들은 버젓이 잘도 살아가고 있고, 살해된 이들조차 그런 인간들이 아니었던가. 살인자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천과 인숙이라는 청춘들이 서로에게 남은 단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을 살인자라 강변하는 비극이라니.

아이러니하게도 루게릭병으로 누군가 계속 몸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문영지가 하는 말은 그래서 울림이 있다. 점점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는 그의 말대로 우천은 그 절망의 끝에서 드디어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우천에게 화를 내고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걱정하는 인숙 또한. 세상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고 손가락질 한다고 해도 '한 사람만' 서로를 알아준다면 적어도 삶이 그리 무가치하지 않다는 걸 이 드라마는 서로의 단 한 사람이 되어가는 남녀의 멜로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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