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토론하라

한겨레 2022. 1. 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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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최근 유튜브 채널 <삼프로티브이>의 대선 후보 연쇄 인터뷰는 유권자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대선을 앞두고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삼프로티브이> 화면 갈무리

이원재 ㅣ LAB2050 대표

2022년 대통령 선거전은 어쩌면 드라마 <지옥>보다 더 심한 지옥이 되어버렸다.

‘화살촉’들은 이미 유튜브의 영향력 높은 진행자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확인되지 않은 개인들의 사생활 정보를 자극적으로 가공해 유포했다. 전통 언론은 이런 이야기를 검증하기는커녕 추임새를 넣으며 더욱 키웠다. 정당들은 이 모든 이야기를 반대편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했다.

‘화살촉’들은 이미 권력이 됐다. 경제권력도 정치권력도 화살촉 권력 앞에 줄을 선다. 한 재벌가 경영자는 자신과 관련된 논란이 번지자 화살촉 이야기를 들으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정치인들은 화살촉의 영상에 연달아 출연해 그들을 승인했다.

하기야 선거는 내전을 공식화한 이벤트라고도 한다. 과거 같으면 창과 칼을 들고 목숨을 뺏고 빼앗기며 탈환했을 권력을, 그래도 합법적 틀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며 경쟁해 나눠 갖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출혈이 있는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고 치자.

문제는 그 싸움의 내용이다. 어차피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질 싸움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놓고 어떻게 싸우느냐에 따라 나라의 수준이 정해지고 우리 삶이 달라진다. 정치가 사생활을 내보여 서로를 도륙하는 싸움판이 될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쪽은 유권자들이다. 특히 우리 다음 세대의 삶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이런 전쟁터에서 미래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한가하다는 핀잔을 듣고 말 것이다.

정책과 비전을 놓고 토론하는 싸움이라면 그나마 생산적이다. 토론은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소통의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요 후보가 공통적으로 지지한 정책은 누가 당선되더라도 실행되는 것이 맞다.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었다면 선거를 통해 더 많이 지지받은 쪽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덜 지지받은 후보의 의견이라도, 충분히 알려지고 호소력이 있었다면 선거 뒤라도 반영될 수 있다. 이때 나온 정책적 입장이, 선거 뒤 정치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사생활과 폭로전을 중심에 둔 ‘화살촉’들의 선거에선 이 모든 과정이 소멸되고 만다. 격차 확대와 성장정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기후재앙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같은 주제는 폭로의 불길 속에 빨려들어가 찾아낼 길이 없어진다. 정치와 정책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정치와 우리 삶의 거리도 그만큼 멀어진다.

정치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정치가 쥔 무기는 더 많아졌고, 정치가 쥔 마이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성능이 좋다. 국민이 쥐여준 그 성능 좋은 무기들을 ‘화살촉’의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하는 데 사용하는 게 지금 대선에서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다른 길은 있다. 시민이 주도하는 길이다. 시민이 요청해 제대로 된 정책 토론을 만들어보자. 후보가 직접 나서서 정책과 비전을 서로 토론하면서, 싸움의 규칙을 바꾸도록 요구해보자.

유권자들은 목마르다. 최근 진행된 <삼프로티브이>의 대선 후보 인터뷰에 대한 높은 관심에서도 입증됐다. 훌륭한 출발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후보들이 치열하게 토론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들도 주도해 함께 논의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굴복시키기 위한 토론만 있는 게 아니다. 소통하기 위한 토론도 가능하다. 후보들이 국정의 파트너로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인정하며, 공통점을 발견해 힘을 모으도록 만들 수 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치열하게 토론하면 된다. 어느 쪽이 옳은지 선거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볼 수도 있고, 선거 뒤에도 토론이 이어지도록 여지를 남겨둘 수도 있겠다. 비슷한 의견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합의해 ‘누가 당선되든지 실행하자’고 선언할 수도 있겠다. 사실 당선 이후까지 미룰 필요도 없다. 당장 현 정부가 실행하도록 후보들이 함께 요구해도 좋고, 소속 정당을 통해 국회에서 입법해 실행해도 좋다.

대통령 한명 바꾼다고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이미 여러차례 경험한 일이다. 대통령 바꾸는 일과 세상 바꾸는 일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다. 동시에 진행해야 함께 성공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세상 바꾸는 일의 시작은, 당연히 대선을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 ‘화살촉’의 대선을 시민의 대선으로 바꿔야 한다.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김동연 후보를 시민의 이름으로 초청해 무대에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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