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너부터 쿠사마까지.. 거장들이 포착한 빛을 보다

장재선 기자 2022. 1. 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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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미술관의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이 올라퍼 엘리아손 작품‘우주 먼지입자’를 가리키며 포즈를 취했다.
윌리엄 터너의 ‘빛과 색채(괴테의 이론)’.
백남준의 ‘촛불 TV’.

■ 북서울미술관, 빛 주제로 ‘英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근현대 작가 43명 작품 110점

5월8일까지 서울 들여와 전시

존 브렛의 2m짜리 ‘…영국해협’

팬데믹에 지친마음 위로하는듯

모네 작품은 보험평가액 500억

백남준의 ‘촛불TV’ 특별초대도

그림·영상으로 보는 빛의 미학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국내 미술 마니아들이 요즘 SNS에 감상평을 앞다퉈 올리고 있는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은 제목 그대로 특별하다. 100년이 넘는 영국 미술관이 10년도 안 된 한국 미술관과 협업해 코로나를 뚫고 대규모 전시를 연다는 것이 그렇다.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해외에서 전시하는 것보다 못한 일이지만, 세계 정상급 미술관이 국내와 전시를 통해 교류하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설립자 이름을 딴 테이트미술관은 1897년 테이트브리튼 미술관에서 시작한 영국의 대표적 뮤지엄이다. 1988년 개관한 테이트 리버풀을 포함해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1993), 테이트 모던(2000)까지 총 4개의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장기 후원을 하며 전시 프로젝트 ‘현대 커미션(Hyundai Commission)’을 선보일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자랑한다.

이번 특별전을 열고 있는 북서울미술관은 서울시가 지난 2013년 동북부 지역의 문화 소외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설립했다. 하계역 인근에 자리 잡고 ‘미술관 문턱을 낮추는’ 대중 친화형 전시를 펼쳐오다가 이번에 테이트의 소장품 110점을 들여왔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 기관들과의 전시 협의가 계속 무산되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추진한 결실이다. 기획자인 오연서 학예사가 코로나에 감염되고, 대규모의 작품설치 협의를 화상으로 하는 등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빛(light)’이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듯 빛은 서양 문명에서 신의 뜻을 구현하는 상징이다. 색을 다루는 미술가들은 이 빛을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채우는 데 활용해왔다. 테이트 전은 서양 근현대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작가 43명의 그림, 사진, 영상, 설치 작품을 통해 빛의 미학을 보여준다. 18세기부터 현재까지 200여 년 동안 작가들이 창조한 작품의 역사적 흐름을 살필 수 있다.

16개 주제로 나눈 전시를 두 번 둘러본 후 미술사학자들의 설명을 통해 몇 가지 관람 포인트를 짚어봤다. 우선, 전시장 초입에서 주목할 작품은 윌리엄 터너(1775∼1851)의 작품들이다. 나란히 전시된 ‘빛과 색채(괴테의 이론)’, ‘그림자와 어두움’(1843)은 홍수라는 자연 현상을 다룬 한 쌍이다. 빛과 어둠을 대비시켜 그 온기의 다름을 포착했다. 괴테의 이론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독일의 문학가이자 과학자인 괴테의 색채론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괴테는 관찰자의 주관을 중시해 색채 현상은 밝음과 어둠이라는 양극의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라고 봤다. 괴테 이론을 차용한 터너의 미학은 종교 관념을 나타내기 위해 빛과 어둠을 활용한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등 이전 작가들과 차별됐으며, 클로드 모네(1840∼1926) 등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전시장 4관에 있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빛의 정서적 속성에 천착한 만큼 친근하게 다가온다. 카미유 피사로(1830∼1903)와 알프레드 시슬레(1839∼1899)는 야외에서 그린 풍경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폭 2.12m짜리 대작인 존 브렛의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해협’(1871)은 하늘과 바다의 선명한 빛으로 코로나에 갇힌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모네의 ‘엡트강 가의 포플러’(1891)는 ‘포흐빌레의 센강’(1894)과 나란히 전시돼 있는데, 즉흥적 붓질이 역력한 이 작품을 작가 스스로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보험평가액만 500억 원으로 이번 전시작 중 최고를 기록했다.

현대 미술가의 설치 작품들은 기술과 예술의 조화 속에서 유희적 재미와 성찰의 울림을 함께 전한다. 인상파 회화 작품들의 한가운데 설치된 야요이 쿠사마(1929∼)의 ‘지나가는 겨울’은 거울을 통해 빛의 무한 반사를 경험할 수 있다. 역시 세 점의 그림과 함께 있는 필립 파레노(1964∼)의 ‘저녁 6시’(2000∼2006)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카펫 바닥에 창문 그림자가 비친 것으로 보이지만, 창이 없는 공간에서 환시 효과를 통해 저녁 빛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감탄을 자아낸다. 제임스 터렐(1943∼)의 ‘레이마르, 파랑’(1969)도 요술과 같은 빛의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터렐의 작품은 강원 원주 뮤지엄산이 상설관 전시를 할 정도로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역시 마니아 층이 두터운 올라퍼 엘리아손(1967∼)은 ‘우주 먼지입자’(2014)를 통해 빛이 만드는 그림자의 신비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꼭 주의해서 봐야 할 작품은 백남준(1932∼2006)의 ‘촛불TV’다. 알려진 것처럼, 백남준은 한국 출신으로 ‘세계인’을 자처한 미디어 아티스트다. 독일의 미디어아트 센터인 ZKM의 베스트 컬렉션 전을 현재 진행하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의 임리원 학예사는 “전시를 준비하며 세계 미디어아트 역사의 중심에 백남준이 있음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촛불TV’는 백남준이 21세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999년에 내놓은 작품이다. 인류 문명의 시작점을 상징하는 촛불과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TV를 함께 아울러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담아냈다. 테이트미술관이 아니라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이지만, 빛을 주제로 한 전시에 어울리기 때문에 특별히 초대했다. 서양 작가들의 200년 빛의 미학을 선보이면서 그 맨 앞에 백남준을 배치한 것은 절묘하다.

전시는 오는 5월 8일까지. 관람료는 1만5000원이며, 티켓을 현장 구매할 수 있고 예매는 인터파크와 위메프에서 가능하다. 문화가 있는 날(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가면 작품 촬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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