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미국의 ‘나홀로 성장’을 지켜보는 불편함

방현철 경제부 차장 2022. 1.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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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피벗(Pivot).’ 최근 미국 월가의 유행어다. 피벗은 회전을 뜻한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변신했다는 얘기다. ‘인플레는 일시적’이란 말을 달고 다녔던 파월은 지난달 ‘인플레는 일시적이 아니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달 1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중계되고 있다. 이날 파월 의장은 성명서에서 '인플레는 일시적'이라는 문구를 공식적으로 삭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연준 의장이 말을 바꾸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의 한 마디를 위해 박사급 경제학자 1000명쯤 달라 붙어 논리를 만든다. 파월은 작년 8월 잭슨홀 연설 때 20분 중 3분의 1이 넘는 8분을 써 가며 인플레가 일시적인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 경제는 ‘물가 안정’을 버팀목으로 지난 40년간 성장을 누렸다. 볼커, 그린스펀, 버냉키, 옐런 등 파월의 전임자들 덕분이다. 연준은 1980년대 초 물가 상승률이 10% 넘던 ‘그레이트 인플레이션’을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 잡았다. 닷컴 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 위기 등도 있었지만 결국 미국 경제가 1등을 유지한 데는 ‘인플레 파이터’ 연준의 기여가 컸다.

그런데 코로나 회복 국면에서 작년 3월부터 미국 물가가 꿈틀댔다. 파월은 ‘인플레는 일시적’이라고 말로 눌러 보려는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11월 물가 상승이 6.8%로 1982년 이후 39년 만에 최고를 찍자 ‘일시적’이란 말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파월의 변신은 어떻게 보면 코로나 때문에 과거로 쉽게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미국 경제 체질이 바뀌었다는 신호다. 지금 미국 경제는 코로나 이전 경제학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 고용시장만 봐도 그렇다. 기업의 구인은 1000만 개가 넘는 데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는 ‘대사직(大辭職·great resignation)’ 현상이 퍼지고 있다. 300만명 넘게 고용 시장에서 사라진 미스터리도 생겼다. 코로나가 무서워 밖에 나오지 않는다느니, 코로나 지원이 과하다느니, 주식이나 코인으로 ‘벼락 부자’가 확 늘었다느니 미국 경제학자들은 이유 찾기에 분분하다. 여하튼 사람이 귀해지니 임금이 오른다. 미국 경제를 지탱하던 ‘물가 안정’은 안갯속에 빠졌다.

파월은 스스로 생각을 바꾼 계기가 ‘임금 상승’을 목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경제가 옛날처럼 네모난 줄 알고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려고 돈을 넘치도록 집어 넣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코로나로 경제가 별 모양으로 변했다. 돈을 풀어도 일자리가 다 채워지기는커녕 임금을 자극하고 인플레만 일으킨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바뀐 미국 경제는 단기간에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아웃소싱’ 시대는 가고 미국 내에서 해결하는 ‘인소싱’ 흐름이 왔다. 예컨대 ‘산업의 쌀’인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지으라고 한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싼 중국산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공급망 병목도 아웃소싱을 막는다. 그리고 ‘인력 이동 장벽’ 시대가 됐다. 백신 접종 등을 요구해야 하므로 저임금 불법 체류자보다 합법 근로자만 쓰는 게 낫다. 코로나 속에서 한 2년 살아 보니 미국도 나 홀로 사는 데 적응하게 됐다는 얘기다.

미국 경제의 체질 변화는 한국에 두 가지 경로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 미국은 한국의 2위 무역 상대국인 만큼 실물 경로다. 작년 역대 최대였던 수출에 먹구름이 낀다는 것이다. 둘째, 금융 경로다. 인플레는 금리 상승을 부른다. 달러 자금이 미국으로 빠지면 한국은 돈이 마르는 위기가 닥칠 수 있다.

한국은 3월 대통령 선거 후 경제 정책 지휘탑도 교체된다. 대선 캠프 경제 책사들은 차기 정부의 정책 그림을 그리고 있다. 코로나 이후 각자도생 시대의 ‘전략 지도’를 만들어야 할 때다. ‘파월 피벗’의 의미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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