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기억 캡슐

김재민 NEW 영화사업부 대표 2022. 1.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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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헬로우 고스트’(2010)를 오랜만에 봤다. 삶을 버리고 싶어하는 주인공을 유령이 된 가족들이 보살펴 주는 코미디이다.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은 김밥을 먹다가 그 속에 들어 있는 미나리를 보고 잊고 있던 가족들의 기억을 찾게 된다. 영화 속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김밥에도 꼭 미나리가 들어갔었는데 뭔가 잊고 있던 캡슐이 터지듯 펑펑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방아’라고 깻잎같이 생긴 풀잎이 있다. 표준어로는 배초향이라고 하는데 내 고향에서는 국물 음식과 부침개에 넣어 먹기도 한다. 그중에 된장을 풀어 각종 채소를 걸쭉하게 끓여낸 ‘찜국’을 할머니가 종종 해놓으시곤 했다.

나는 어릴 적 미나리도 방아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했던 식재료들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부모님의 나이가 되고 보니 어디선가 방아향을 맡으면 할머니가 생각나고, 미나리를 먹게 되면 소풍날 새벽부터 김밥을 싸시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깨물면 바로 어떤 순간으로 이끄는 ‘기억 캡슐’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노력하지 않아도 그 순간이 눈앞에 나타나곤 한다.

얼마 전 전북 부안에 갔다. 오래전에 아버지와 형과 같이 전라도 일대를 여행했던 적이 있다. 마침 전화를 하신 아버지와도 그때를 추억했고,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형이 생각나 잠시 대화가 끊겼다. 형과 함께했던 것들을 나 혼자 할 때 그를 떠올리게 된다. 함께한 순간들은 그런 식으로 쓱 하고 떠오르고, 그때야 비로소 이별과 부재를 실감하게 된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 우연히 먹게 된 음식, 그리고 어쩌다 다다른 장소에 내가 그들과 나눈 시간이 다양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 내가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도 언젠가는 캡슐로 저장되어 기억되리라. 새해에는 지금 같이 있는 사람들과 귀중하게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왕이면 좋고 아름다운 기억을 그 캡슐에 넣어야지 하는 마음을 새겨보게 된다.

김재민 NEW 영화사업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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