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모산업으로 농지 줄어 쫓겨난 농민들.. 이상국가를 꿈꾸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2022. 1.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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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7] 유토피아 (상)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는 16세기 영국 정치가이며 작가인 토머스 모어(Thomas More·1478~1535)가 만들어낸 말이다. 1516년에 출판한 ‘유토피아’에서 이 말이 유래했는데, 고대 그리스어 ‘u(없는)’와 ‘topos(땅·나라)’를 합친 ‘존재하지 않는 나라’인 동시에 ‘eu(좋은)’와 ‘topos’를 합친 ‘행복한 나라’라는 두 가지 의미다.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는 이상적인 나라를 말한다.

이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 사회가 행복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런던 시내에 설치된 교수대에서 빈민 20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도둑 창궐을 막기 위해 당국이 절도범을 한꺼번에 처형하고는, 시민들에게 교훈을 주겠다며 시체들을 그 자리에 매달아 두어 썩도록 한 것이다. 어쩌다 이런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까?

이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 이야기다.

“양은 언제나 온순하고 아주 적게 먹는 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양들이 너무나도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까지 잡아먹는다고 들었습니다. … 만족을 모르고 탐욕을 부리는 한 사람이 수천 에이커를 울타리로 둘러막고 있습니다. 소작농들은 쫓겨나서 여기저기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결국 도둑질 끝에 교수대에 매달리든지 유랑하며 구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원래 경작과 수확을 위해 많은 일꾼이 필요했던 그 땅에 가축을 풀어놓은 뒤에는 양치기 하나면 충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이 뜻하는 바는 이렇다. 원래 시골에서는 많은 사람이 농사지으며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직물업이 발전하여 양모 수요가 늘고 가격이 급등하자 지주 귀족들로서는 농사보다는 양을 쳐서 양모를 파는 것이 훨씬 큰 이익이 되었다. 그래서 농민들을 내쫓아 버리고 넓은 땅에 울타리를 쳐서 목장을 만들었다. 그 넓은 땅에 양만 가득하고, 원래 농사짓던 사람들은 쫓겨나 도시로 가서 흔히 범죄자가 되었고 심지어 사형을 당한 것이다. 이 사람들이 원래 사악한 범죄자인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더 큰 이익을 탐하는 지주 귀족들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소수가 부자가 되는 대신 다수가 빈곤에 빠지다 못해 죽음으로 내몰린다면, 이곳이 과연 정의로운 사회란 말인가?

근대사회의 핵심 문제는 불평등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없을까? ‘유토피아’에서 모어는 가상의 이상 국가 유토피아를 직접 보고 왔다는 주인공 히슬로다에우스(Hythlodaeus·‘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입을 빌려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한다.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돈이 모든 것의 척도로 남아있는 한, 어떤 나라든 정의롭게 또 행복하게 통치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정의가 살아 있고 누구나 복된 삶을 살아가는 사회가 되려면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화폐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바탕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어 가지면 누구나 공평하게 부를 누리고 수준 높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유토피아는 정말로 극단적인 평등 국가다. 이 나라에는 54도시가 존재하는데, 모두 같은 계획에 따라 건설되었기에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각 도시 안의 집들 또한 같은 구조를 하고 있고, 집의 문은 항시 열려 있어서 누구든 밀고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나라에는 사유재산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생활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식사도 각자 자기 집에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을 회관에 모여서 함께 먹는다. 그뿐 아니라 국민 모두 건국 이래 수백 년 세월 동안 변치 않는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이 나라의 핵심 원칙은 모든 국민이 하루 6시간씩 일하는 것이다. 전 국민이 함께 노동하여 일단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아이디어다. 또 오직 생필품만 생산한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곡물로 막걸리나 맥주 같은 불요불급하고 백해무익한 상품을 만드는 일은 없다. 혹시 누가 술 마시고 싶다는 허튼소리를 하면 ‘술에 취하면 그 순간 너는 행복하다고 믿겠지만 사실은 착각에 불과하며, 실제로 진정한 행복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훈계만 들을 것이다. 결국 이 나라 시민들은 절제하는 미덕을 갖추고 반듯한 삶을 살아간다. 흔히 간과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요소는 이 나라 사람들은 하루 6시간만 일하기 때문에 그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지적·종교적·예술적 교양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 사회에서는 기본적 생존 문제부터 위협받지만, 이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다 함께 노력하여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그에 더해 고상한 덕을 연마하며 살 수 있다.

토머스 모어가 1516년 출간한‘유토피아’초판본에 담긴 유토피아 지도. /마자랭 도서관

모어는 이런 아이디어를 정말로 현실적 안이라고 생각한 걸까? 그의 책에서 하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많은 독자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책 말미에서 극적 반전이 일어난다. 주인공 히슬로다에우스가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을 때 저자인 모어 자신이 다시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히슬로다에우스의 주장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비판적 논평을 한다. 유토피아라는 나라의 법과 제도 가운데서 많은 것이 부조리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적 소유 없는 공동체 생활과 화폐 없는 경제가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때까지 개진했던 핵심 내용을 일거에 뒤집는다.

도대체 모어의 진의는 무엇일까? 작품 속 모어와 히슬로다에우스 중 어느 편이 진짜 저자의 뜻일까? 분명 히슬로다에우스가 설명하는 유토피아도 모어의 생각이고, 그것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위험한가 하는 비판 목소리도 모어의 생각이다. 모어는 불행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이지만 극단적인’ 해결책으로서 유토피아라는 모델을 먼저 제시하고는 다음에 현실 관점에서 반박한다. 현실을 대변하는 ‘자아’가 실험적 사고를 하는 ‘또 다른 자아’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식이다.

‘유토피아’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그냥 이상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촉구한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고 긴급한 방안을 요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성급하게 ‘단순 무식한’ 답을 내놓으면 안 된다. 잘못된 답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유토피아로 가는 길이 자칫 디스토피아(dystopia·암울한 미래 사회)로 가는 급행 루트가 될 수 있다. 모어가 자기 책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극단적 정의는 바로 부정의(不正義)이기 때문이다.

폴 콜리어가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말하듯 오늘날의 불안한 사회에 대해 잘못된 답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 옹호자와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대중 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 두 부류다. 이런 사람들은 단지 현 사회의 불안과 분노를 능숙하게 활용할 뿐 그에 대처할 능력은 없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그에 기반한 원숙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다.

[유토피아 계획이 실현된 나라]

아마도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와 가장 가까운 현실 국가로 크메르 루주가 만들어낸 혁명 캄보디아를 들 수 있다. 당시 프랑스의 한 언론사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거대한 헛간에 모여 먹는 식사부터 아이들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이 공동체적이다. 돈도 없고 월급도 없다. 각자 하루에 쌀 1㎏과 1년에 소금 600g, 옷 한 벌, 즉 검은 바지와 블라우스를 받는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일해야 한다. 화폐가 없기 때문에 공동체 바깥에서는 생존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 그들은 하루 8시간 일하고 이론상으로는 한 달에 사흘 쉬는데, 쉬는 시간 대부분은 정치 교양 훈육에 바쳐진다. 라디오에서는 당이 주관하는 전달 사항과 혁명 가요를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쏟아붓는다.”

사유재산과 화폐제 철폐, 공동 식사, 공동 거주, 공동 노동, 똑같은 옷, 자유 시간에 이루어지는 덕성 함양 등 ‘유토피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4년 집권 기간 중 전 국민의 4분의 1인 100만명 이상을 살해한 인류 역사상 최악에 속하는 체제 중 하나였다. 유토피아 이상이 기계적으로 작동하면 끔찍한 디스토피아 세계가 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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