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우리의 권력' 함께 만드시죠
[경향신문]
“위원장님, 결국 정치하려는 거 아닙니까?” 배달대행사 사장이 배달 고용보험을 문의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민망한데, 세상 사람 중에 날 정치를 할 정도로 유명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분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조합 위원장도 정치인이다. 노동자들의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측과 정부를 상대로 한 협상과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삶과 제도를 바꾸는 일을 한다. 국회의원처럼 항의전화와 문자폭탄을 받기도, 응원과 격려를 받기도 한다. 국회가 아닌 길거리에서 연설하고 방송국이 아닌 작은 회의실에서 토론하고, 보좌관 대신 동지들이 있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시민단체 임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나 여의도가 아니라도 정치는 할 수 있다.
정치하려는 거 아니냐는 말의 본뜻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익을 대의로 포장하고 자신이 비판하던 기득권 정당에 들어가는 거 아니냐는 의심이다. 사람들은 정치 참여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어제와 오늘의 신념이 달라지는 정치꾼을 싫어한다. 사람들이 의심을 거둘 수 없는 건 응원하던 대표의 배신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경력을 발판으로 정치를 하던 앞 세대를 ‘내로남불’ ‘위선자’라고 강하게 비판하던 소위 MZ세대마저 자신이 던졌던 말들을 배반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이력서를 넣고 있다. 이재명, 윤석열 선거캠프 명함을 들고 병풍처럼 서 있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후보자 망언을 옹호하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념과 가치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징으로 규정하기도 하는데 선거철 아비규환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보편적 현상이다.
사회적 영향력은 개인 능력으로 확보하는 게 아니다. 기자회견에서 현수막을 드는 사람, 집회 인원이라도 채우려 길바닥에 앉는 사람, 월 1만원의 정기 후원을 보내는 사람, 용기를 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한 사람들이 다져놓은 텃밭 위에 대표가 자라고 그의 얼굴과 목소리가 세상에 피어난다. 아름답게 핀 꽃이 지고 열매가 열려 떨어질 때, 농부가 다시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만 챙겨 떠난다면 그 땅은 황폐해진다. 사회운동을 개인이 사유화하는 걸 경계하는 이유다. 물론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독자적인 정치권력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586으로 싸잡혀 욕을 먹지만 기득권 정당과 날을 세우며 묵묵히 노동현장의 간부로, 사회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헌신적인 운동가들이 있다.
양당 정치는 돈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다수의 표를 조직해 만든 공고한 통치체제다. 개인에게 부스러기처럼 주어진 권력이나 명성으로 날선 비판 몇 마디 한다고 무너지지 않는다. 나이든 운동권 청년의 푸념일지 모르지만, 자아가 너무 비대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피지 못하면 자신이 가는 길이 곧 정의라 믿는 내로남불 정치인이 될 뿐이다. 물론 사회운동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비례후보나 선거캠프 인사가 되는 것보다 노조나 시민단체 간부가 되거나 새로운 운동을 개척하는 게 더 매력적이고, 가슴 뛰는 일로 만들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이를 바탕으로 진보정당 정치인을 계속 배출해야 한다. 새해엔 정치하려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의 권력을 함께 만들자는 답변을 당당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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