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소원을 반드시 들어주는 나무
[경향신문]
소원을 떠올리게 되는 새해다. 사람의 소원을 반드시 들어주는 나무라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사람의 마을에서 살아온 영험한 나무가 있다. 이야기 못지않게 신비로운 생김새를 간직한 이 나무는 199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천 도립리 반룡송’이다.
‘하늘로 오르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는 용’이라는 뜻의 ‘반룡(蟠龍)’이라는 이름의 이 소나무는 무엇보다 생김새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눈길을 압도하는 나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도 생김새가 특이하다는 점이다. 이른바 ‘기형목’으로의 보존가치가 인정된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이천 도립리 반룡송’은 산수유꽃 잔치로 널리 알려진 경기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마을 들녘 한가운데서 천년 동안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온 수호목이다.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신라 말에 활동한 도선국사가 함흥, 서울 등 전국의 풍수 좋은 다섯 곳을 표시하기 위해 심은 나무 중에 살아남은 한 그루다. 이야기대로라면 나무의 나이는 무려 1100년 정도 되어야 하지만, 생물학적 나이와는 큰 차이가 있다.
높이가 4m를 살짝 넘는 낮은 키의 이 소나무는 멀리서 얼핏 봐서 별다를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사방으로 12m 넘게 펼친 나뭇가지 아래쪽을 살펴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비틀리고 꼬이며 하늘로 오를 듯한 꿈틀거림을 간직한 나뭇가지의 기묘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신묘하다.
오래도록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신비로운 전설을 품은 반룡송이 사람의 소원을 반드시 들어준다고는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모든 소원을 무조건 다 들어주는 건 아니고, 딱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는 조건이다. 하고한 소원 가운데 가장 간절한 소원 하나만을 골라서 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반룡송을 통해 소원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해도 나무 앞에 서서 모든 소원을 이루고 말겠다는 탐욕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절실한 소원 한 가지만 짚어낸다는 것만으로도 새해를 맞이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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