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
[경향신문]
정치를 잘 모르지만 이렇게 대선이 가까워진 시점엔 정치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대선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투표에서도 가장 큰 이벤트다. 투표권 유무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관심을 가지고 그 과정과 결과를 함께해야 한다. 누군가는 염려하는 정치에 대한 ‘과도한 관심’도 대선 시국에는 미덕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데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과 관심이 큰 몫을 했다. 대선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상징한다.
이번 대선을 ‘비호감 대선’이라고도 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 조사’가 단골메뉴가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동의하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유권자 모두의 지지를 얻는 후보는 없다. 어떤 후보든 유권자 성향별로 호감도를 갖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지지율로 반영된다. 예컨대 A후보의 지지율이 30%라면 나머지 70%는 A후보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면 된다.
비호감 대선이란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비호감이 곧 ‘혐오’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후보에 대한 비호감 내지 혐오는 곧 ‘정치 혐오’를 가져오고, 정치 혐오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 낮은 투표율로 이어진다. 대체로 국민들이 정치에 체념하고 투표도 잘 하지 않을 때 이익을 보는 쪽은 기득권 세력이다. 그러므로 비호감 대선이란 말은 사실상 기득권 세력의 ‘언어’로 봐야 한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자학할 게 아니라면 비호감 대선이란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 지난 대선을 돌아봐도 ‘비호감’ 없이 당선된 후보는 없었다. 유독 이번 대선에만 비호감이라는 잣대가 따라다니는 이유를 모르겠다.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는 게 반드시 ‘호감’을 동반하지도, 동반할 필요도 없다. 투표란 국민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이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고, 선택의 이유를 제3자가 호감 내지는 비호감으로 갈라쳐서 해석할 영역의 것도 아니다.
이렇게까지 염려하는 데는 ‘혐오’가 대선판 깊숙이 이미 들어왔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등 보수층에서 “20대 남성의 표심”이라며 공을 들이는 ‘젠더 이슈’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기득권 세력에서는 젊은 세대의 지지율을 끌어올 ‘묘수’로 젠더 이슈를 제시해왔다. 자칭 ‘젊은 보수’를 자처하는 일부 2030세대 정치인들의 과거 인터뷰만 뒤져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젠더 이슈가 대체 뭔지부터 짚고넘어갈 필요가 있다. 여러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지만, 결론은 ‘여성 혐오’다.
젠더 이슈를 중앙정치무대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지난 총선에도 있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번 대선은 다르다. 국민의힘이 젠더 이슈를 앞장서서 선거 전략으로 들고나왔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지율이 떨어지자 내놓은 첫마디 사과도 “젠더 문제(이슈)에 잘못했다”는 말이었다.
이번 대선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결과에 따라선 혐오를 자양분으로 삼는 ‘혐오 세력’이 정치무대에 데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있는 혐오를 없다고 외면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선에서 혐오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이제 65일 남았다. 투표는 해야 한다.
송진식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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