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택배 파업, '사회적 합의'의 마지막 시험대
[경향신문]
문재인 정부의 5년을 정리하고 평가하기에 가장 유용한 키워드를 찾자면 역시 ‘사회적 합의’ 아닐까. 이 말은 종종 무엇을 하지 않기 위해 등장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게 된 이유로 활용됐다. 차별금지법 입법 요구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무르익지 않았다’면서 미룬 것은 전자의 대표적 사례이고, 대선 당시 공사중단을 공약했던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를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면서 재개한 것은 후자의 대표적 사례다.
무엇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이 말이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다만 이때는 ‘촛불혁명의 요구’라는 합의되지 않은 말이 쓰이곤 했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이슈가 그랬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실제로 그것들을 요구했는지, 요구했다면 그 방향성에도 모두 같은 주장을 했는지 등은 검증하기 어렵지만, 어쨌거나 지난 5년간 촛불집회는 사회적 합의의 근거로 이리저리 꾸준히 소환됐다.
매사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일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남북문제에서 그랬다. 2018년 전까지 북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는데,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교류 이슈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사회적 합의’와는 정반대 방향의 노력이었던 셈이다. 그 결과 남북은 한동안 평화 국면을 이뤘고, 국민들의 인식도 상당히 개선됐다.
사회적 합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최근 박근혜씨 특별사면 결정은 그야말로 기이했다. 사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지만, 대통령은 그것을 핑계 삼아 미루지 않고 강행했다. 사면 결정에 앞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결정이 이뤄진 뒤에도 국민을 대상으로 결정 이유를 설명하는 모습은 사실상 없었다. ‘국민통합’이라는 막연한 취지와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라는 말만 남았다. 안 그래도 5년 동안 너덜너덜해진 말이지만, 이 결정으로 ‘사회적 합의’라는 말은 관 속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문제에 대한 제도화를 넘어 제도의 지속을 담보하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를 경험한 시민들은 ‘사회적 합의’라는 단어 자체에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자주 오용됐고, 크게 오염됐다.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부터가 민망한 지경이 됐다.
이제 관 뚜껑에 못을 박아야 할까 싶지만, 사회적 합의를 둘러싼 마지막 시험대가 남아 있다. 택배노동자들의 파업이 그것이다. 지난 12월28일,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2020년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이어지자 같은 해 7월에 정부·여당까지 참여하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마련된 바 있는데, 이 기구에서 2021년 1월과 6월에 걸쳐 도출한 사회적 합의를 사측이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택배노조는 주장한다. 택배사 노사는 노동자 처우개선에 쓰는 조건으로 택배비를 인상한다는 내용에 합의했지만 CJ대한통운은 인상분의 일부만 처우개선에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면에서 노사의 주장을 모두 다루긴 어렵다. 다만 사회적 합의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노사 양측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사회적 합의기구에 정부도 참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만큼이나 그것을 이행하는 과정에도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노조의 주장대로 사측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일이 사회적 합의에 대한 마지막 시험대인 것은 그래서다. 사회적 합의의 본래의 의미가 이뤄진 일이 제대로 완수될 수 있도록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하나의 전형을 마련한다면, 적어도 관 뚜껑은 열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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