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양극화·분열에 정치 환멸..시민사회 결집해 '다리' 역할 해야" [신년 인터뷰 - '민주주의 이론 석학' 래리 다이아몬드]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2022. 1. 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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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계는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 민주주의 후퇴와 포퓰리즘·권위주의 세력의 득세를 경험했다. 미국이 주도한 민주주의정상회의를 계기로 민주주의 논쟁은 초강대국 간 체제 경쟁의 전면으로 등장했다. 민주주의 이론의 세계적 석학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사진)는 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2022년 새해에도 민주주의 쇠퇴 경향은 계속될 것이며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거의 붕괴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민주주의 퇴보의 원인으로 지정학적 힘의 균형 변화, 세계화의 불균등한 충격, 이민 증가 등 외부적 요인과 각국 내부의 경제적 불평등, 불공정의 증가에서 찾았다. 그러면서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혁신을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이데올로기적, 당파적 균열에 다리를 놓기 위해 결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현재 세계 민주주의는 어떤 추세인가.

“민주주의의 광범위한 쇠퇴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멀어지는 나라들이 민주주의에 가까워지는 나라보다 더 많다. 일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덜 자유주의적인 상태가 됐다. 많은 선거민주주의 국가들이 고장이 나거나 인도와 브라질처럼 비자유주의적 포퓰리스트 지도자와 정당으로부터 심각한 압력을 받고 있다. 중국, 러시아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체제들은 국제 무대에서 더 강력하고 공격적이며 확신에 차 있다. 전 세계 국가 중 절반 정도가 체제의 형식 면에서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권위주의 체제와 가치들이 더 큰 탄력을 받고 있다.”

- 민주주의 쇠퇴가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고품질 또는 자유민주주의는 시민들에게 본질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민주주의는 다른 어떤 종류의 정치 체제보다 인권을 잘 보호하고 사법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보장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이익을 더 잘 대표하고 시민들의 요구에 반응하며, 정책적 실수를 바로잡는다. 또한 그간 축적된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해 고품질의 민주주의가 부패 통제, 환경 보전, 불평등 억제, 시민에 대한 복지 제공 등에서 더 유능하다는 점도 증명됐다.”

- 지난해 국제사회는 민주주의 쇠퇴에 대해 무기력했다.

“유감스럽게도 전 세계에서 미국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집단적 힘은 약해진 반면 독재 국가들, 주요하게는 중국과 러시아의 힘과 협력이 증가하고 있다.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가 스탠퍼드대 교정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홈페이지

이로 인해 민주주의가 확립된 국가들이 민주주의 역행을 사전에 억제하거나 되돌리기 위해 쏟을 수 있는 레버리지가 감소했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사례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기 때문에 베이징이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티베트와 신장에서 목격해 온 슬프지만 고통스러운 진실이다. 중국은 크고 아주 강력한 나라가 됐으며 중국이 내부적으로 어떻게 통치하는지에 관해 서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레버리지는 거의 없다. 하지만 대만은 사정이 다르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만 민주주의의 성공을 인정·지지하고 베이징의 권위주의 체제가 일방적인 해법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돕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미얀마의 경우 집단적으로 부패하고 억압적인 군부 정권에 대해 가혹한 제재를 부과해야 한다. 동시에 군부가 일종의 다원적이고 헌법적인 체제로 복귀하도록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집단적인 레버리지는 역시 제한적이다.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 사례는 헝가리와 폴란드다. 헝가리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두 정권이 사법부 독립, 법의 지배, 개인의 자유 및 민주적 절차에 대한 존중 등에 관한 유럽연합(EU)의 기준을 준수할 때까지 EU의 순금융자산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 코로나19 팬데믹이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은.

“팬데믹 시기 정부 권력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건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은 상당한 개인적 자유를 누리지만 동료 시민 그리고 전체 사회의 건강을 위험에 빠트릴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가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시민들을 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럽 특히 미국에서는 정부가 부과한 이런 의무가 분열의 원천이 됐다. 이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감소시키고 정치적 불만과 양극화를 고조시켰다. 정부가 팬데믹 기간에 권력을 강화하면서 생기는 다른 위험은 공중 보건 위기가 끝났는데도 정부가 이를 내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휴대폰에 설치한 동선 추적 애플리케이션(앱)이나 다른 형태의 모니터링 및 규제들이 이에 해당한다. 건강 및 접촉자 추적 정보 등 정부가 팬데믹 기간에 획득한 어떤 종류의 비상 권력도 위기가 끝나면 종료되어야 한다.”

- 미국 민주주의는 어떤 상태인가.

“미국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이자 시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정치 체제가 극도로 양극화됐다. 미국의 주요 양대 정당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임기 말 민주적 절차를 거의 파괴한 권위주의적 인물에게 점령됐다. 불행히도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직에 다시 도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현재 공화당 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설상가상 공화당은 미국의 많은 주에서 투표권을 제약할 뿐더러 공화당이 지배하는 주 의회와 당파적 인물들이 선거 집행과 인증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법들을 열심히 제정하고 있다. 나는 미국이 2024년 대선에서 2020년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미국 민주주의가 거의 붕괴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미국에서 관용과 용서라는 민주적 규범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우려스럽다. 체제 보전을 하려면 폭력이 필요하다는 신념이 사람들 사이에서 증가하고 있다. 민주적 규범의 쇠퇴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총기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

- 미국 민주주의 쇠퇴를 보여주는 ‘트럼피즘’의 본질은.

“트럼프에게 정책은 아무런 중요성도 없었으므로 트럼피즘의 본질은 정책이 아니다. 사실 트럼프는 정책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속한 공화당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정강을 만들지도 채택하지도 않았다. 트럼피즘의 본질은 체제, 딥스테이트(정부를 움직이는 제도 밖의 엘리트 권력집단) 그리고 법원과 언론, 직업 관료제를 포함하는 기성 제도에 대한 반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극도의 반민주적 포퓰리즘이 채택해온 고전적 공식이다. 이것은 분노와 반감의 운동으로서 양극화 상황에서 자라나는데 트럼피즘의 경우 인종적 분열과 정체성 분열 위에서 번창했다.”

- 미 민주주의 쇠퇴의 세계적 함의는.

“우리는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기간에 미국이 고립주의로 후퇴하고 세계적 관여와 책임을 멀리했을 때 초래된 위험한 결과를 목격했다. 미국 자유민주주의 사례는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미국 민주주의가 계속 쇠퇴한다면 분명히 전 세계 민주주의에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보다 다극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EU는 매우 중요한 행위자로 남아 있고 세계적으로 한국, 일본 등 자원과 영향력을 보유한 중요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존재한다.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적 가치들을 지키고 증진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단합해야만 이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민주주의정상회의의 의미는.

“많은 곳에서 민주적 규범과 제도들이 공격받는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조직화되고 세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이런 대응의 일부였다. 앞으로 각 정부는 민주적 원칙들을 방어하기 위한 연대뿐 아니라 그들의 영토 안에서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개혁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중국 압박 도구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적 원칙들을 지키려고 행동하고 이 중요한 목적을 위해 모일 때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다른 권위주의적 정권들은 이를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며 신냉전을 추구한다고 맹렬히 비난한다. 민주주의정상회의에 참석한 어떤 나라도 신냉전 또는 중국·러시아와의 갈등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다른 이웃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위협했고, 유럽의 가장자리에서 전쟁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전체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그 지역의 자원을 군사화하고 독점하기 위해 가차없이 움직임으로써 인도·태평양 지역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대만을 위협하는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내고 군사력을 호전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만약 신냉전으로 흘러간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맑은 눈으로 봐야 한다.”

- 민주주의 쇠퇴는 내재적 문제인가, 환경과 운영의 문제인가.

“현재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침식과 퇴보의 시기에 대한 책임 자체는 민주주의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정학적 힘의 균형의 변화, 세계화가 각국 내부에 미친 경제적 불안정 효과, 이민 증가 압력이 유럽과 미국에 미친 영향 그리고 각 민주주의 국가 내부의 문제들 특히 경제적 불평등과 불공정의 가파른 증가 등에 원인을 돌려야 한다. 민주주의가 지속 가능하려면 우리는 소득과 부의 분배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불공정과 불평등의 증가에 대처해야 한다. 미국의 유명한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우리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갖거나 막대한 부가 몇 사람의 손에 집중되도록 할 수 있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 민주주의 퇴조와 포퓰리즘의 관계는.

“포퓰리즘은 양극화의 산물인 동시에 양극화를 생성하고 증폭시킨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고 느끼는 분노한 시민들과 엘리트 및 소수자들 사이에 패인 깊은 분열을 이용해 권력을 잡고 유지한다. 설 자리를 잃었다고 느끼는 시민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정당한 몫이라고 생각하는 권력과 자원들을 엘리트와 소수자들이 도둑질했다고 느낀다. 포퓰리즘은 냉소적이고, 교묘하며, 패권적이다. 포퓰리즘은 인민이 확립된 규칙과 제도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고, 포퓰리스트 지도자와 정당에게 맹목적 신념을 갖도록 호소하며, 주요 인종 집단이 취약한 소수자와 이민자들에게 등을 돌리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협을 가한다.”

- 민주주의 쇠퇴를 되돌리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단일한 해법이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지표가 되는 몇가지 중요한 원칙들이 있다. 먼저, 단기적인 당파적 이익이나 이데올로기적 목표가 아닌 민주적 원칙과 규범들에 충실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고 민주적 규범 및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의 쇠퇴를 되돌릴 순 없다. 둘째, 각국은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 증대 문제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 수 있고 스스로를 계발하고 발전시킬 기회를 가지는 공동의 기획이다. 셋째, 민주주의 국가들은 기후변화처럼 그들이 직면한 정책적 도전 과제 그리고 고령화, 물리적 인프라 노후화, 이민, 정체성 분열 같은 여러 다양한 도전들에 대해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정치적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직면한 다양한 도전들은 공통적이므로 조율된 대응을 할 필요도 있다.”

- 한국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은 정치적 양극화와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여러 국가들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제3의 민주화 물결’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서 30년 이상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다. 주요 대선 후보를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은 행동을 절제하고 상호 관용이라는 민주적 규범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한국에서도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국 민주주의 관찰자와 연구자들 사이에선 사법 시스템의 정치화, 부패의 지속,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와 우위를 추구하는 정치적 태도에 대한 우려가 증가해 왔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시민사회가 정당의 노선과 정당 체제를 뛰어넘어 결집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본다. 시민사회가 기본적인 민주적 가치들에 대한 신념을 쇄신하고 민주주의와 ‘좋은 거버넌스’를 약화시키는 정치적 행위들을 개혁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 모두 선거자금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우선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최근 몇년 동안 미국 민주주의에서 심화된 문제들은 시민사회 조직과 연합 등이 더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이 네트워크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적, 당파적 분열에 다리를 놓고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개혁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만약 한국에 그런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형성하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정치적 정체 상태에 대한 불만은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첫 번째는 소외와 냉소, 퇴장이 증가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개혁을 위한 결집이다. 첫 번째 경향은 민주주의의 쇠퇴, 궁극적으로는 붕괴로 흐른다. 두 번째는 쇄신으로 이어진다. 한국과 미국이 모두 두 번째 경로를 선택하기를 희망한다.”

래리 다이아몬드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이자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미국 비영리기구인 ‘미국민주주의재단’이 펴내는 ‘민주주의저널’의 공동 편집자다. 그는 민주주의 이론 연구에 헌신하는 동시에 미국 국무부, 유엔, 세계은행 등 다양한 정부기구 및 국제기구에 자문을 제공함으로써 전 세계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노력도 기울여 왔다. 그는 각종 실증적 자료 분석을 통해 2006년부터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퇴조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해 왔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을 수차례 방문했고, 김병국 전 고려대 교수와 함께 <한국 민주주의 공고화>라는 책을 편집하는 등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식견도 넓다. 다이아몬드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해 말부터 수차례 e메일로 진행됐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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