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오겜' 일상인 플랫폼 노동자

김준영 2022. 1. 3.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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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까지 찍어서 보여줘도 '고객님이 아니라고 하잖아요'만 반복하는 걸 어떻게 못 하는 내 처지가 참."

별의별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이 넘쳐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는 직접 전달에 실패한 경우 사진을 찍어 올바르게 배송이 됐는지 증거를 남기고 있다.

플랫폼이 등장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의 고민은 한결같다.

경제와 플랫폼이 발전하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 열심히 밑작업을 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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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까지 찍어서 보여줘도 ‘고객님이 아니라고 하잖아요’만 반복하는 걸 어떻게 못 하는 내 처지가 참….”

1년 남짓 배달노동자로 활약 중인 한 지인의 최근 토로였다. 별의별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이 넘쳐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는 직접 전달에 실패한 경우 사진을 찍어 올바르게 배송이 됐는지 증거를 남기고 있다.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나오지 않아 부재중이라고 판단해 문 앞에 음식을 남기고 사진을 찍었지만, 고객님은 다른 곳에 배송이 됐다며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김준영 경제부 기자
“사진에 찍힌 대로 호수에 맞게 배송하지 않았냐”고 항변했지만 플랫폼의 담당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고객느님’의 말씀만을 반복해서 전한 뒤, “본인 과실 인정하실 거예요? 말 거예요?”라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모, 못하겠다면 어, 어쩔 건데요”라고 최대한 발끈해 봤지만,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궁극의 반격에 결국 “인정할게요”로 마무리됐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찾아오며 눈부시게 성장하던 플랫폼의 성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며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고객의 편의도 함께 향상되는 데 반해 플랫폼 노동자들의 플랫폼 종속은 심해져만 간다.

플랫폼이 등장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의 고민은 한결같다. 앱이 지시하는 대로 동선을 짜서 배달을 했더니 중간에 철길이나 장벽이 있어 수십분을 돌아가야 해 해당 동선은 거르거나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는 등 다양한 차원의 문제점이 나왔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아마존이나 구글, MS 등 글로벌 플랫폼 차원에서도 같은 문제들이 제기된 바 있다. 글로벌 플랫폼 또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기회로 영어를 이용하는 개발도상국이나 실직자, 주부 등 근로취약계층을 무섭게 파고들었다. 과일이나 동물 등과 섞인 사진 속에서 사람 얼굴을 골라내거나 맞춤법을 교정하고 음란물·욕설을 걸러내는 등 플랫폼이나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력이 투입됐다. 인력 모집과 관리까지 플랫폼에서 모두 이뤄지는 만큼 일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 또한 기본 매뉴얼 외에는 없다. 시스템 이상이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물론 설명은 없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유감없이 확인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 뒤에 숨으면 포착되지 않는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거나, ‘침으로 핥아내거나 불로 긁어내도 제대로 모양만 뽑아내면 된다(설탕뽑기)’ 등의 꼼수를 몰래 공유하는 ‘오징어게임’ 속 참가자들 말이다. ‘VIP들의 즐거움’을 위해 설계된 게임인 탓에 게임 참가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경제와 플랫폼이 발전하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 열심히 밑작업을 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 요즈음이다. 과거 대리운전기사 때부터 그러했듯 이들에 대한 규모조차 제대로 추정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계속 꼼수를 공유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할까, 연대해 알고리즘의 개선을 요구해야 할까, 아니면 플랫폼 기업의 처벌을 요구해야 할까. 대선이 코앞이지만 그림자 속 노동자(고스트 워커)와 관련한 정책 논의는 찾아보기 힘든 2022년의 현실이다.

김준영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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