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 '착취방송'은 보고 싶지 않다

전종휘 2022. 1. 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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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방송작가유니온 등이 30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편집국에서] 전종휘 | 사회에디터

박성제 <문화방송>(MBC) 사장이 새해 의미 있는 화두를 던졌다. 박 사장은 신년사에서 “방송문화진흥회라는 공적 기관이 대주주로 존재하고 방송문화진흥회법을 통해 공적인 관리·감독을 받는다는 점” 등을 들어 문화방송은 민영방송이 아니라 공영방송이라고 못을 박았다. <한국방송>(KBS)이나 <교육방송>(EBS)과 달리 수신료라는 공적 재원을 받지 않고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을 들어 제기되는 ‘문화방송은 민영방송’ 논란에 대해서도 “전세계 공영방송 중에 수신료 없이 광고로 운영되는 곳도 많다”며 민영방송이 아님을 강조했다.

박 사장이 2022년을 시작하는 말로 공영방송을 꺼낸 것은 3월9일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쪽에서 ‘문화방송 민영화론’을 다시 불 지피는 데 대한 대항의 성격이 있다. 하지만 “민영방송이나 종편보다 훨씬 불리한 제도를 우리가 감내해온 것은 ‘엠비시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명제를 모두 숙명처럼 가슴에 새겼기 때문”이라는 박 사장의 말에서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다. 그는 2008년 ‘광우병 사태’ 관련 <피디수첩> 보도 사태 때 이명박 정부의 탄압이 들어오자 전국언론노조 엠비시본부장으로서 투쟁을 이끌었고 2012년엔 공정방송 투쟁 과정에서 이유 없는 부당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공정’에 관해서도 그는 말할 자격이 있다.

그런데 지금 문화방송에선 공영방송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불공정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침 종합뉴스 프로그램인 <뉴스투데이>에서 9~10년 일하다 해고당한 두 방송작가가 아직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사건이다. 두 작가는 노동법의 근로계약이 아닌 민법의 위임계약을 맺고 프리랜서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실제로는 문화방송에 매일 출퇴근하며 수시로 문화방송 정규직 피디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하는 등 지휘·감독을 받는 노동자였다. 이들 노동자가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3월 이들 작가는 문화방송 소속 노동자가 맞다고 판정했다. 앞선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결정을 뒤집었다.

말이 좋아서 ‘근로자성 인정’이지 풀어서 얘기하면 사실상 문화방송이 10년 동안 이들 작가를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착취했다는 얘기와도 같다. 이들은 휴게시간, 유급 연차휴가, 퇴직금 등 노동법이 노동자에게 보장하는 권리를 빼앗긴 채 일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개된 이야기는 여느 대기업에서 보던 것과 익숙하다. 문화방송은 중노위 판정이 잘못됐으니 이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문화방송은 중노위 판정 뒤 이들 작가를 직접 고용하는 게 아니라 해고당하기 전처럼 프리랜서로서 복직하라고 제안하는 꼼수도 썼다. 문화방송의 태도를 보면, 1심인 행정법원에서 패소하더라도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갈 태세다. 이는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비정규직 방송작가들한테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문화방송은 보도·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기업의 이런 행태를 숱하게 비판해왔다.

고통은 방송작가 두 명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상파 방송에 만연한 프리랜서와 하도급, 불법 파견 등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인 뒤 고용노동부는 방송 3사의 시사교양·보도 분야 작가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한 결과를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문화방송 방송작가 69명 가운데 33명은 문화방송에 고용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한국방송에선 167명 중 70명, <에스비에스>(SBS)에선 127명 중 49명이 노동자임을 인정받았다. 이와 별도로 한국방송 전주총국 작가와 <와이티엔>(YTN) 디자인팀 소속 12명도 최근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노동자임을 인정받았다. 업계에선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절반 가까운 수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파악한다.

우리는 지금 <피디수첩> 사태 때 이명박 정권에 맞서며 “내가 잡혀가도 제2, 제3의 박성제가 나타날 것”이라던 박성제 사장을 상대로 제2, 제3의 비정규직 방송작가들이 투쟁에 나서는 안타까운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방송시장 환경과 회사 경영사정이란 이름의 손수건으로 이들 노동자의 피눈물을 닦을 순 없다.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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