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금융 정책은 대선판 거스름돈인가

조귀동 기자 2022. 1. 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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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동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책 경쟁은 뒷전이고 후보 간 네거티브 선거전만 극성을 부리고 있다지만, 금융 분야는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등 주요 대선 주자들은 개인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증권 거래세, 공매도나 20~30대들을 겨냥한 가상자산 등에 대해서는 목소리 높여 투자자 권익을 강조한다. 하지만 금융 분야의 이슈에 대해서는 캠프 차원의 정책도 제대로 된 게 없다.

이재명 후보는 몇 달 전만 해도 19~34세 청년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00만원가량을 빌려주자는 기본 대출 공약을 내세웠었고, 윤석열 후보는 금융 범죄를 많이 다루는 검찰 특수부가 주된 경력이다. 하지만 요즘 두 사람이 내세우는 정책 메시지는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주가 부양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금융 분야에서 오래된 쟁점 중 하나인 감독 기구 개편의 경우 기획재정부의 ‘거스름돈’ 정도 취급을 받는다. 이재명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기획재정부 내 예산 기능 분리가 금융 감독 기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몇몇 정치권 및 금융 당국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노무현 정부 때 기획예산처처럼 예산 기능이 따로 떨어져 나갈 경우, 현재 금융위가 갖고 있는 금융 정책 기능이 기재부로 이관돼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재정경제부와 비슷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위원회로 바뀌는 방식으로 개편될 수밖에 없다”고 한 관계자는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 감독 관련한 이슈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조직 개편도 상당히 번거롭기 때문에 기재부가 바뀌지 않으면 금융위-금감원 체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감독기구 개편은 문재인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제기한 이슈였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숭실대 교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수석(한성대 교수)을 비롯해 원승연 이재명 캠프 금융경제특보단장(명지대 교수·전 금감원 부원장),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이 2016년 발표한 논문 ‘모델 금융감독법의 구조-기본 내용과 법안의 제안’이 대표적이다.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가 지난해 4월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학회, 윤창현·이용우 의원 주최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 체제는 변화가 없었고, 전성인 교수는 지난 2018년 KDI(한국개발연구원) 세미나에서 ‘금융위원회 해체’를 주장하는 내용을 준비했다가 발표 직전 해당 내용이 통째로 삭제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내 대표적인 금융 전문가인 이용우 의원(전 카카오뱅크 사장)은 “산업 진흥, 건전성 감독, 소비자 보호 등 상충하는 목표가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한쪽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다른 한쪽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정책이 비일비재하다”(2021년 4월 금융학회 세미나)고 지적한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안팎의 금융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도 없고,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지도 않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예 관심도 보이지 않는 윤석열 후보 측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중요한 과제인 금산분리는 금융 관료들이 짜놓은 판 그대로 움직이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금산분리 이슈는 ‘삼성이 은행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장악하고, 무분별하게 신용을 끌어다 쓰고 금융시장까지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금산분리 이슈가 중요해지는 것은 금융의 디지털화 속에서 새로운 문제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을 갖고 있는 IT기업(빅테크)들은 점차 금융 서비스 판매에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등 금융업 계열사들이 각각의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가지면서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들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국제결제은행

이들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장악이라는 이슈뿐만 아니라, 플랫폼 지배력을 바탕으로 한 금융업 지배 가능성이라는 쟁점을 낳는다. 시장 독과점 이슈와 연결되는 셈이다. 미국의 경쟁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인 리나 칸이 플랫폼 업체들이 시장 지배력과 막대한 자본력을 이용해 고객들을 ‘독점’하고 이를 이용해 기업을 상대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약탈적 가격’ 문제를 제기한 것을 금융당국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더군다나 금융산업에서도 전통적인 금융업 영역 붕괴에 따른 새로운 시장 규율 원칙 제정과 독과점 규제 이슈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산업이 가상자산 거래소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부터 1위 사업자 업비트가 8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금융 자산이나 관련 서비스에서 1~2곳의 사업자가 독주할 때 단순히 공정위에 모든 걸 맡겨둘 수는 없다. 또 전통적인 금융회사들은 심지어 알뜰폰 사업까지 공격적으로 펼치는 등 금융업 밖에서 보폭을 늘려가고 있다. 단순히 부수·겸영 업무를 넓혀주는 것만으로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케이스 바이 케이스’ 별로 금융위원회 등이 대응하는 게 전부다. 진짜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금융 관료를 의미)’에게 모든 걸 맡겨두는 셈이다.

유능한 관료들에게 일을 맡기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승자와 패자가 뚜렷한 산업에서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유력 대선 주자들 모두 아무런 입장이 없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게 정치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말이다. 금융 정책이 대선 정국의 거스름돈 마냥 취급받는 현실이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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