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의 피', 익숙함 속 새로움, 새로움 속 익숙함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2. 1. 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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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뻔한 경찰은 잊어라. 2022년 첫 한국영화인 '경관의 피'는 그간 다루었던 우중충한 컬러의 점퍼와 운동화 차림의 경찰 대신 새로운 모습의 경찰 콤비를 내세워 눈길을 끈다. 명품 슈트와 시계를 착용하고 최고급 외제차를 몰며 입장료만 몇 천 만원인 멤버십 클럽을 드나들며 범죄자를 쫓는 경찰. '경관의 피'는 그간 볼 수 없었던 경찰의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다. 

광역수사대 박강윤(조진웅) 반장은 독보적인 검거율로 에이스로 불리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폰'을 받아 범인을 잡는 것으로 의심을 사는 존재. 강윤의 행위가 '경찰의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감찰계장 황인호(박희순)는 범인 검거 과정에서 있었던 동료의 폭행을 법정에서 증언하는 원칙주의자 형사인 최민재(최우식)를 눈여겨보고 그를 박강윤을 감시하는 '두더지', 즉 언더커버 경찰로 투입시킨다. 어쩐 일인지 강윤은 자신의 팀에 배정받은 민재를 첫날부터 데리고 다니며 자신만의 수사 방식을 모조리 공개하는 등 호의적이다. 

강윤의 수사 방식은 독특하다. 첫날부터 민재의 점퍼 대신 명품 브랜드 라이더 재킷을 입히고 외제차를 운전시키며 자신을 '반장님' 대신 '사장님'이라 부르라 한다.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고급 빌라 내에는 온갖 명품으로 가득한 드레스룸과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묵직한 금고도 있다. 빌라로 민재를 불러 슈트를 착장시키는 강윤은 그에게 '1% 범죄자를 잡기 위해 필요한 유니폼'이라 설명한다. 그뿐인가. 마약 투입 등 범죄사실이 뻔한 사채업자(백현진)를 잡기는커녕 정보 제공을 받고, 거액의 돈까지 받아 멤버십 클럽에 입성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보면 분명 황인호 계장의 판단대로 강윤은 선을 넘은 비리 경찰로 보인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혼란스러운 건 그 직후 강윤의 행동. 사채업자의 돈을 빌려 입성한 클럽에서 쫓고 있던 범죄자를 잡아 들이고, 사채업자를 정보원으로 쓸지언정 빌린 돈은 이내 갚는다. 황인호 계장은 강윤이 상위 1% 부자이자 마약사범인 나영빈(권율)을 쫓는 이유가 나영빈을 제치고 마약 시장을 먹으려는 조폭두목 차동철(박명훈)의 스폰을 받기 때문이라 짐작했만 정작 강윤이 차동철과 접촉하려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강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던 민재는 혼란에 휩싸이고, 이는 그를 지켜보는 관객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는 위법을 해서라도 범죄자를 잡겠다며 흑과 백의 경계인 회색지대에 선 강윤의 신념과 정의 실현의 과정도 원칙에 맞게 깨끗해야 한다는 민재의 신념의 충돌을 그리면서 동시에 민재를 향해 알 수 없는 호의를 보이는 강윤과 그에 스며드는 민재의 '브로맨스'에 집중한다. 이전에 '불한당'에서 설경구-임시완의 언밸런스한 콤비 모습이 묘한 팬덤을 모았던 것처럼, '경관의 피'도 조진웅과 최우식의 언밸런스한 '케미'에 집중한다. 피지컬부터 경찰의 묵직한 카리스마를 지니되 능수능란한 처세를 보이는 베테랑 강윤과 진실에 접근할수록 혼란을 느끼지만 점차 성장해가는 가녀린 체구의 민재의 모습에서 '킹스맨' 시리즈의 해리 하트 요원(콜린 퍼스)과 에그시(태런 에저튼)의 조합도 연상된다.  '킹스맨'이나 '불한당'처럼 '경관의 피'도 화려한 명품과 배우들의 몸에 날렵하게 맞춰진 슈트 핏이 시선을 사로잡는 건 물론이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문제는 경찰을 감시하는 언더커버 경찰, 법과 위법을 줄타기하며 범죄자를 쫓는 경계에 선 경찰 등 새로운 모습은 돋보이지만 그 외의 설정이나 서사는 여타 범죄물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것들이라 진부하게 느껴진다는 점. 신종 마약을 둘러싼 경찰의 수사라는 점에서 '독전'이나 최근 개봉했던 '유체이탈자' 등 여러 영화가 오버랩되며 기껏 일군 신선한 설정을 뻔하게 만들며 김을 빼게 만든다.

조진웅-최민식 콤비에 집중한 때문일까, 주변부 캐릭터가 다소 밋밋한 점도 아쉬운 포인트. 특히 권율이 맡은 나영빈은 상위 1% 부자인 마약사범이라는 설정이 새로웠고, 배우 또한 12킬로그램을 증량하고 발성을 달리하며 눈길을 끈 것에 반해 캐릭터 자체의 힘은 약하기 그지없었다. 특유의 저음과 분위기가 일품인 박희순의 존재감은 여전하지만 '마이 네임'에서 독보적인 스타일리시를 뽐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활용도도 못내 아쉽다. 

정의와 정의의 신념 격돌을 매끈한 스타일로 포장한 '경관의 피'. 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뚫고 주춤한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1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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