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물을 찾고, 종로에서 서울을 찾는가

한겨레 2022. 1. 3.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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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사진 픽사베이

#분명히 이리로 가면 서울역이라는 붉은 색 화살표를 보았고 그것이 가리킨 쪽으로 가는데 아무리 살펴도 서울역이 안 보인다. 일정시대 붉은 벽돌로 된 건물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저기구나 하고 가보면 아니고 여기구나 하고 와보면 또 아니다.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곳으로 따라가 보지만 역시 아니다. 기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어디선가 기적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이리저리 헤매다가 문득 들려오는 “서울역에 서울역이 숨어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 꿈에서 나온다. 웃음이 난다. 언젠가 구원파라는 집단이 교회를 어지럽힐 때 어느 집회 자리에서 한 청년의 “목사님은 구원받으셨습니까?”라는 건방진(?) 질문에 “당신은 혹 구원받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구원받을 수 없는 몸이오. 안양이나 수원에서는 서울 갈 수 있겠지만 종로에서 어떻게 서울 갈 수 있겠소?”라고 답한 적이 있었지. 말은 오래 전에 그리 했지만 심층의식은 아직 안양쯤에 있다는 메시지인가? 뭐 아무래도 좋다.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마포나루 한강이 서해바다에 이르러 섞이지 않을 방도가 있겠는가? 기우멱우(騎牛覓牛)라, 소 등에 앉아서 소를 찾는다는 옛말이 있는 걸 보면 이제나 저제나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기다려라, 참고 기다려라, 남은 건 시간문제다. 아멘. 고맙습니다. 두리번거리지 마라, 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라, 천하가 천하에 감추어져 있느니, 여기가 바로 거기다. 알겠습니다.

#북산(北山)과 어디론지 가는 길이다. 울퉁불퉁 내리막이다. 수레 비슷한 무엇을 타긴 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저쪽 모퉁이에 북산 모친이 두툼한 수건을 머리에 쓰고 앉아계신다.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인사를 하지만 인사가 가서 닿는 것 같지 않다. 북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가까운 놈은 멀고 먼 놈은 가깝고, 그게 그렇구먼!” 평소에 가깝던 사람은 멀어지고 멀리 있던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그런 뜻이다. 고개 끄덕이며 동의하다가 꿈에서 나온다. 누가 한마디 속삭여 말한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사람을 믿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라는 그런 말씀이지.” 완전 깨어나서 답한다. 옳다, 겉모습만 보면 판판이 속게 마련이고 속을 보면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그것이 인간이다! 겉모습에 속지 마라, 그래야 중심이 보이고 중심에서는 모두가 하나인 너다. 지심(地心)은 동서남북이 따로 없느니!

#전국 교사들 모임이란다.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새로운 직책과 그에 어울리는 직함을 만들어 누구를 임명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못하고 부작용이 있어서 직책도 직함도 아예 없던 것으로 돌린다. 기억나지 않는 몇 가지 사건들이 벌어지고… 문득, “범인이 범인으로 되었다가 범인으로 돌아오면 저절로 범인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실은 이 말을 귀로 들었는지 눈으로 읽었는지 아니면 머리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말의 뜻을 금방 알겠다. “보통사람[凡人)]이 잘못한 사람[犯人)]으로 되었다가 보통사람[凡人)]으로 돌아오면 저절로 본보기 사람[範人]이다.” “예”가 “아니”로 되었다가 다시 “예”로 돌아오면 그것이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예”라는 말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를 거슬러 집을 떠나지 않은 큰아들은 제가 사는 집이 어떤 곳인지, 아버지 그늘에서 산다는 게 무슨 복인지, 아직 모른다. 오히려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있다. 반면에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은” 둘째아들은 만신창이 몸으로 돌아와서 제가 사는 데가 무슨 낙원인지, 아버지 모시고 사는 게 어떤 축복인지, 뼈저리게 알고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렇다, 아무나 모범일 수 없는 거다. 세상 모든 범인(犯人)을 함부로 손가락질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삼 다져본다.

#8, 9학년 마음공부. “친구의 잘못을 제가 샀어요. 오해를 사더라도 친구의 잘못을 덮어주는 게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러고 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하네요. 아직 제가 충분히 강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친구의 잘못을 샀다는 말은 친구가 저지른 잘못을 네가 뒤집어썼다는 말이냐? 음, 대견하고 멋지다. 잘했어. 그런데 마음이 불편하다? 그건 네 말대로 아직 충분히 네가 자유롭지 못해서다. 괜찮아.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굵어지고 개울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르면 넓은 강으로 되듯이 너도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을 만큼 자유롭고 든든해질 거다. 하지만 너 자신한테 너무 강요하지는 마라. 그러다가 나무가 부러지거나 개울이 마를 수 있거든. 아무튼 네가 멋진 사람으로 되느냐, 못난 사람으로 되느냐는 다른 누가 아니라 네가 결정하는 것이니 불편하더라도 할 수만 있으면 계속 그렇게 해보아라.

글 이현주 목사/ 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선생님.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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