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기다리는 마음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2022. 1.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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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태어난 지 50년이 가까워 오지만 새해가 되면 한 번씩 떠오르는 노래다. 김민부 작사, 장일남 작곡의 노래는 제주 방언으로 쓰여진 시가(詩歌)가 바탕이 됐다. 제주도에 사랑하는 여자를 남겨두고 목포에 온 남자가 월출봉에 올라 여자를 그리워하고, 여자는 성산 일출봉에 올라가서 남자를 그리워하다가 망부석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담은 가곡 ‘비목’의 작곡가 장일남은 문화방송 프로듀서로 일하던 김민부와 힘을 합쳐 이 노래로 만들었다. 당시 장일남은 김민부가 건네준 가사를 읽고 단숨에 ‘기다리는 마음’을 완성했다고 한다.

부산 출신의 김민부는 고등학교 시절에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 <항아리>를 내고 서라벌예대(지금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천재 시인이었다. 당시 소설가 천승세, 김주영, 유현종을 비롯하여 시인 이근배와 박이도, 사학자 이이화 등이 그의 입학 동기들이다.

김민부는 동국대로 편입하여 졸업한 뒤 부산문화방송 공채 1기 PD로 입사했다. 라디오 최장수 프로그램인 <자갈치 아지매>는 그가 처음 기획한 작품이었다. 장일남의 오페라 <원효>의 대본을 쓰기도 한 그는 서울 본사로 자리를 옮긴 뒤 작가 겸 PD로 활약했다. 시조 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이 평소 “노랫말이 필요하면 김민부에게 가라”고 할 정도로 어떤 글이든 소화해내는 필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 친구들에게 시 쓰기와 병행하면서 끊임없이 방송원고를 써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1972년 10월 김민부는 서울 서대문 자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만 31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부산 송도 암남공원에 ‘기다리는 마음’ 노래비(사진)가 있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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