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미·중관계사] 中 공산당의 '골치' 美와 국민당 관계

2022. 1. 2. 22:3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해 11월 9일과 25일 미국 의원들이 대만을 연쇄적으로 방문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대만 관계의 강화 문제가 중국 공산당에는 '골칫거리'가 됐다.

그러나 1995년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의 방미로 중국 공산당은 미국에 거센 반발을 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미국에 대한 입장을 선회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국민당과 미국의 관계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9일과 25일 미국 의원들이 대만을 연쇄적으로 방문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대만 관계의 강화 문제가 중국 공산당에는 ‘골칫거리’가 됐다. 악연의 시작은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정부가 국민당을 인정하고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50년 뒤 국민당이 대만에 정부를 수립한 후 미국과 동맹을 맺으면서 미·중 관계에 적잖은 악영향을 끼쳤다. 미·중 관계 악화는 1979년 미·중 수교로 말끔히 씻겨 간 듯했다. 그러나 1995년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의 방미로 중국 공산당은 미국에 거센 반발을 했다. 그리고 지난 2년간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의 연쇄적인 대만 방문으로 중국의 경계심은 커져 갔다.
중국 공산당이 창당된 1921년 당시만 해도 미국은 주적이 아니었다. 중국 공산당에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됐지만 타도 대상은 아니었다. 중국 공산당이 정적으로 삼았던 나라는 영국이었다. 다음은 일본이었다. 1928년 일본의 동만주 진출이 본격화되자 일본을 반제국주의의 새로운 타깃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타깃에서 제외됐다. 비록 당시 몇몇 공산당 지도자들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싹트기 시작했음에도 공산당은 미국에 유독 관대했다.
미국 의원단과 회견하는 대만 차이잉원 총통(맨 오른쪽). 출처:야후뉴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미국에 대한 입장을 선회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국민당과 미국의 관계였다. 우선 미국이 국민당의 내전에 재정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내전의 대상이 공산당과 북벌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1928년부터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자연스럽게 분류하기 시작했다. 더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이 중국 통일의 주체를 국민당으로 낙점했다고 공산당이 인식한 것이다. 이에 더해 미국의 국민당 내전에 대한 지원이 재정과 비용에서 무기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국과 국민당이 결탁하는 모습을 본 공산당은 미국을 중국 통일의 최대 장애물 중 하나로 봤다.

2022년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의 전략경쟁은 한층 더 고조될 전망이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대만에 대한 유엔 가입 지지 성명서를 냈기 때문이다. 유엔 가입은 장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미·중 갈등은 지속될 것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