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코끝 시린 피날레..서로의 심장이 된 이산과 성덕임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2. 1. 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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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녀의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의 사랑도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스러졌고 그의 사랑만 남아 그녀의 자취를 따라 맴돈다.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 가슴 시린 피날레를 맞았다. 배아파 낳은 문효세자를 잃은 의빈 성덕임(이새영 분)은 뒤이어 사통의 죄를 저지른 동무 영희(이은샘 분)마저 잃고 시름에 잠기다 병을 얻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조차 정조 이산(이준호 분)을 찾기보다 동무들을 찾았던 의빈은 임종의 자리에서 “전하는 전하가 지켜내신 많은 이들이 전하를 지켜드리겠지만 내 동무들에겐 나밖에 없다”며 “다음 생에 다시 만나게 되면 아는 체 말고 옷깃만 스쳐 지나가 주세요”라고 당부한다. 대못 박는 유언에 “정녕 작은 마음 한 조각도 나를 연모하지 않았더냐?” 묻는 이산에게 덕임은 손을 뻗어 그 얼굴을 쓰다듬으려다 차마 닿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훗날 제조상궁이 된 경희(하율리 분)는 당시를 회고하는 이산에게 의빈의 심정을 대변하며 “작은 허세였을 뿐”이라고 전한다. 의빈은 동무들에게 “내가 전하를 연모하는 사실을 온 세상이 다 알아도 전하만은 몰라야 된다”며 “그런 작은 허세라도 부리지 않으면 못 버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드라마는 영리하게 상실로부터 오는, 또 부재로부터 오는 서러움을 시리도록 잘 표현했다. 승은 상궁이 되어 궐밖으로 휴가를 떠나는 동무들을 배웅하는 덕임은 떠나가는 동무들과 함께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예전엔 너무나 당연한, 너무나 일상적이었던 풍경이었는데 다시는 그 풍경 속에 자신은 낄 수 없다는 서글픔을 작은 손인사로 떠나보낸다.

덕임과 함께 할 때 화사하고 따뜻했던 별궁의 햇살은 이산 혼자 남겨졌을 때 시리고 서러운 빛을 찬란하게 비춘다.

경희가 건네준 덕임의 유품에서 세손 시절 자신이 덕임에게 내준 반성문 숙제를 발견한 이산. 당시엔 단지 곯려주는 재미를 만끽하던 순간이었는데 그때 짓던 덕임의 표정 하나하나가 이제는 더없이 따뜻하고도 서럽게 가슴을 친다.

아름다우면서 빨리 지는 것은 봄날의 꽃만은 아니다. 인생 역시 아무리 긴 듯해도 언제나 짧은 법. 당연한 듯 함께 했던 사람과 불현듯 영이별을 맞이할 때 그 또는 그녀와의 순간순간들은 얼마나 애틋할 것인가.

드라마는 의빈 성씨가 죽었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좋은 임금이었던 정조도 죽었습니다로 끝나지 않았다. 덕임과 이산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 이산이 정무를 땡땡이 치고 별궁을 찾아 덕임의 무릎을 베고 한바탕 낮잠을 즐긴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16화의 그 장면에서 잠에서 깬 이산은 생뚱맞게 “너 여기 있었구나”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고 덕임은 내내 여기 있었다며 이산의 땀을 닦아줬었다. 드라마는 엔딩에서 이 장면으로 돌아간다. 마치 문효세자를 잃고 덕임을 잃고 그후로도 오래 선정을 펼치다 병을 얻어 앓아누웠던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라도 되는 듯.

잠에서 깨 다시 편전으로 가려던 이산은 덕임의 손을 잡고 별궁의 꽃구경에 나선다. “전하와 다시 한번 꽃구경을 하고 싶다”던 아마도 꿈 속 덕임의 소망을 떠올렸으리라. 그리고는 늦었다고 채근하는 덕임에게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며 다시 한번 “제발 나를 사랑해라”라고 호소한다. 덕임에겐 더 이상 임금이 아닌 지아비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이에 덕임은 따뜻한 입맞춤으로 대꾸한다. 지금 이 순간이 비록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이대로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제발 나를 사랑해라”는 이산의 호소는 사랑을 떠나보낸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 후라 더욱 절절하다. 그런 절절한 이산의 마음에 덕임도 “세상 다 알아도 전하만은 몰라야 된다”던 허세를 접고 제 속내를 입맞춤으로 전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심장이 되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의 최종일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기준 16회 전국 17.0% 순간 최고 19.4%, 17회 전국 17.4%, 최고 18.1%를 돌파했다. 영리한 구성, 배우들의 열연이 어우러진 잘된 드라마다운 스코어다.

/zaitung@osen.co.kr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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