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동의 없이 시술" 폭로에도..갈 길 먼 '통합 진료'
심장과 대동맥 사이에는 피가 거꾸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판막이 있습니다. 이 판막이 딱딱하게 굳으면 피가 잘 흐르지 않아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거나 가슴에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협착증 환자들은 가슴을 절개한 뒤 판막을 교체하는 외과적 수술을 받아왔는데요, 약 10년 전부터 허벅지에 작은 구멍을 낸 뒤 혈관을 통해 인공 판막을 심장까지 밀어 올리는 경피적 대동맥판 삽입술(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 이른바 'TAVI' 시술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수술보다 6배 정도 비싼 데다 그중 20%만 건강보험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조건부 선별급여 항목이지만, 가슴을 절개하지 않아 회복기간이 빠른 게 장점입니다.
TAVI 시술을 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시술 절차를 지켜야 합니다. 국내에 TAVI 시술이 도입된 지 10년을 좀 넘어, 젊은 환자에게 시술했을 때 15년, 20년 뒤 내구성이 충분한지와 같은 검증이 끝난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2018년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국내외 연구 결과에서 수술이 어려운 중증 환자에 대한 TAVI 시술은 안전하고 효과적이었다고 결론을 내면서도, 5년 이상 장기 추적관찰 연구는 더 축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또, TAVI 시술 시 적합한 환자 선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TAVI 시술을 하려면 순환기내과, 흉부외과 등 전문의들이 심장 통합진료를 거쳐 시술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전문가들이 모여 개개인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심장 통합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법을 찾아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선 통합진료 절차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급기야 서울 한 대형병원의 전·현직 흉부외과 의사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장 통합진료에 참석해 동의한 것처럼 의료기록이 위조됐다고 폭로했습니다. 7개월 동안 위조된 기록으로 53건의 TAVI 시술이 이뤄졌고, 이러한 사실을 병원에 알렸지만 이렇다 할 조치가 없었다는 겁니다.
▷ [끝까지판다] "동의 없이 시술" 내부 고발 후 전보 발령 (풀영상)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575959 ]
병원 측은 "통합진료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전화로 소통하거나 이후 차트에 기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지난해 코로나 방역과 전공의·임상강사 파업 등 여파로 정상적인 병원 업무가 진행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고 말합니다. 보도 이후에도 "경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TAVI 시술 관련 SBS 보도에 대한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의 성명서
"타비 시술은 고위험 시술로, 실패할 경우 생명을 잃거나 비가역적인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절차적 장치를 결국 '대필 서명지'로 만든 것은 가볍지 않은 행위다." "고발된 사안에 대하여 신속하고 철저한 법적 조사를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 "타비 시술 시 서명 도용과 사문서 위조가 존재하여, 통합진료제도에 위해를 가했다면, 타비 시행기관에서의 퇴출을 포함한 조치가 이행되어야 한다." "환자는 시술 성공률의 소수점 몇 %의 통계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며, 이런 환자를 지키며 적절한 시술을 수행하기 위해 통합진료제도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순환기내과 의사들이 소속된 대한심장학회의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최근 TAVI 시술에 대한 환자들의 선호가 늘어나자 수술을 원하는 흉부외과 의사들이 통합진료에 제동을 거는 경우가 많았다고 반박합니다. TAVI 시술 도입을 둘러싸고 흉부외과와 순환기내과 사이 의견 대립이 이어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김효수 대한심장학회 이사장 |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통합진료 과정에서 순환기내과는 시술을, 흉부외과는 수술을 하겠다고 주장하니 의견이 대부분 불일치됩니다. 결국 환자의 편익을 존중하기 위해 환자의 선택에 맡기고 있습니다. 보통 인체에 손상을 덜 입히는 TAVI 시술을 환자들이 선호하다 보니, 흉부외과에서 통합진료에 제동을 거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 상태에 따라 명확하게 의견 일치가 되는 경우는 문제가 없으나 의견이 달라서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글로벌 지침에 맞추어서 연령 75세 정도를 기준으로 TAVI 시술과 수술 여부를 나누는 방식으로 신사협정을 맺는 것이 좋은 타협책이라고 봅니다"
두 전문가 집단의 힘겨루기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답답할 뿐입니다. 복수의 전문의가 통합진료 참석 및 동의 여부가 위조됐다고 폭로하고 나선 것 자체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통합진료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법적 책임을 따지는 경찰 수사와 별개로, 문제가 제기된 병원이나 지급된 급여의 적정성 평가를 맡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나서 그동안 통합진료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반석 기자jbs@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병원도 학교도 못 갔다…23 · 21 · 14살 세 자매 '유령의 삶'
- 中 방역 위반자들 모아서 '행진'…도 넘은 공개 망신
- 부천→안산 택시 탄 남성, 도착하자 코트 휘날리며 도망
- 추가 합격 기다리는 수험생들, 02 전화받고 '격분' 왜?
- “음식 엎은 알바에게 800만 원 받아간 손님, 보험 된다니 연락두절”
- 5명 손잡고 '강강술래'→기습 '슛'…日 고교축구 명장면
- “딸 생일에 피자” 외면 않았다가 돈쭐난 사장님, 그 뒤…
- 학교 앞 만취 사고 잡고 보니 '신부님'
- 5층 벽 뚫은 택시 추락한 곳, 신호대기 차 1m 옆이었다
- “형, 이것도 못 해?” 꼬드겨 개통한 폰, 착취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