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태우는 자와 지키는 자'..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디지털 정보 홍수 속에 특정 사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와 지식 보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지식을 구조화하고 자원화한 대표적 기관인 도서관은 존립 위기에 처해 있다. 단기적 편익 추구 경향으로 자금 지원은 줄고, 디지털 지식 보존·관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공간을 부수고 책을 불태운 수많은 지식 파괴의 역사를 견뎌 온 도서관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문화의 보고로서 생존할 수 있을까.
영국의 대표적 도서관 중 하나인 옥스퍼드대 보들리도서관 관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는 책과 도서관의 역사를 되돌아본 저서 '책을 불태우다'를 통해 지식 보존의 중요성·공공성을 강조한다. 인류의 지식과 권력을 둘러싼 전쟁터로서 도서관의 생성·성장·변천사를 토대로 오늘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책과 도서관의 존재 의미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가 사회를 구성해 모여 산 이래 기록물은 사회가 건강하게 기능하기 위한 핵심적 도구였다. 따라서 지식의 집적이 곧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하다는 생각이 고대부터 싹텄고, 지식 저장소인 기록관·도서관은 여러 이유로 공격 대상이 돼 왔다.
가령 도서관의 효시로, 기원전 3세기 초 세워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한때 파피루스 두루마리 문헌 70만 권을 보존했지만 기원전 4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집트 공략 당시 불에 탔다. 다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전설은 사서와 기록 관리자들이 지식을 보호하고 보존하도록 노력하게 하는 자극이 돼 왔다.
1814년 영국은 미국을 침공하면서 의회도서관을 불태웠고, 1914년 독일은 벨기에의 루뱅대학 도서관을 공격했다. 한 사회 또는 국가가 지식·문화 집적체로서 다른 사회의 도서관을 파괴한 사건들이다. 특히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때의 참상이 단적인 예다. 그해 8월 25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시가지가 격전의 중심지가 되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가·대학 도서관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파손됐다. 포탄을 발사한 것은 세르비아 민병대로, 이들은 도서관을 의도적으로 목표로 삼았다. 보스니아 전역의 도서관과 기록관 수십 군데가 파괴되고 200만 권의 인쇄본도 순식간에 사라진 문화 말살이었다.
저작자가 직접 또는 지인을 통해 자신의 저작물을 없애고자 한 사건들도 상당했다. 바이런이 사망한 후 그의 회고록 원고는 고인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아내와 친구 손에 파기됐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쓴 서사시 '아이네이스'나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들은 불태워 달라는 저자의 유언을 지인들이 지키지 않았기에 위대한 작품으로 남았다.
저자가 근무하는 옥스퍼드대 보들리도서관도 중세 종교개혁 시기에 역사적 수난을 겪었다. 수많은 수도원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이 신교도들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책과 함께 불태워졌는데, 당시 옥스퍼드대 도서관도 장서 96.4%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그 폐허를 딛고 토머스 보들리(1545~1613)가 사재를 털어 도서관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지금의 도서관 체계의 초석을 마련했다.

저자가 책과 도서관 파괴의 역사를 이토록 장황하게 풀어놓은 것은 현시대를 분서 수난에 버금가는 지식 파괴의 위기로 보고 있어서다. 수많은 기록과 자료가 디지털로 생성, 유통되지만 사회의 기억 보존을 책임질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 정보와 지식의 기록이 모두 거대 기술기업의 소유이자 돈벌이인 까닭이다. 이들이 공공적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데이터 보존 작업에 동참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저자는 더 늦기 전에 디지털·온라인 데이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책과 도서관에 얽힌 역사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 지식 보존에 대한 미래지향적 고민에 방점을 찍고 있는 점에서 도서관의 역사를 다룬 이전 출간 서적들과 차별화된다. 책을 키워드 삼아 세계 문화·지성사를 담고 있어 애서가라면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다. 역자의 지적처럼 진시황의 분서갱유 등 동양의 사례가 빠져 있는 점은 아쉽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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