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홍합 한 그릇.." 미국서 날아든 2천 달러 편지

지난달 12일 한 70대 노인이 노란 봉투를 들고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를 찾았습니다.

노인은 "미국에 사는 친구 부탁"이라며 지구대장에게 봉투를 전하고 떠났습니다.

봉투를 열어 보니 2천 달러 수표와 함께 "존경하는 신촌파출소 소장님께"로 시작되는 편지 한 통이 담겨 있었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익명을 요구한 장 모(72·남) 씨였습니다.

장 씨는 "미국 뉴욕에 살면서 직장에서 은퇴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1970년대 중반 강원도의 농촌에서 서울 신촌으로 와 고학생으로 생활했다고 합니다.

어느 겨울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허기진 채 귀가하던 중 신촌시장 뒷골목에 리어카를 세우고 홍합을 파는 아주머니들을 마주쳤습니다.

장 씨는 배가 너무 고팠으나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고민하다가 "한 그릇만 먹을 수 있을까요? 돈은 내일 가져다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 중 한 명이 선뜻 뜨끈한 한 그릇을 내주어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 씨는 그 홍합 값을 내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이라도 돈이 없는 건 마찬가지여서 결국 갚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장 씨는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에 이민을 한 뒤에도 줄곧 그 아주머니에게 마음의 빚을 진 채 살았습니다.

"그 친절하셨던 분께 거짓말쟁이로 살아왔다"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제 삶을 돌아보면서 너무 늦었지만, 선행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에 돈과 함께 이런 편지를 보낸다"고 적었습니다.

장 씨는 2천 달러로 "지역 내에서 가장 어려운 분께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제공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신촌지구대 황영식 대장은 오늘(28일) 2천 달러를 환전한 226만 6천436원을 신촌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마봄협의체)에 기부했습니다.

협의체는 지역 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노인, 장애인 1인 가구 등 어려운 이웃에게 식품과 생필품을 전달하는 서대문구 산하 단체입니다.

황 대장은 "기부자의 의사에 따라 가장 어려운 분들에게 연말에 따뜻한 음식을 대접해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며 "어려운 시기에 이런 기부 문화가 더욱 퍼져 많은 분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신촌지구대 제공,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sbsnewmedia@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