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이성윤 공소장' 유출 경로 못 찾자 취재기자 수사

유영규 기자 2021. 12. 2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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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최소 3명 이상 기자들을 사실상 피내사자나 피의자 신분으로 통화 내역을 들여다본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찰'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입니다.

논란의 시발점이었던 '통신 자료 조회'와 달리 특정 기자를 대상으로 영장이 필요한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확보하는 강제 수사가 이뤄진 것이라 공수처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오늘(27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난 4월 본격적인 수사 활동을 시작한 뒤 최소 현직 기자 3명의 통화 내역을 들여다본 정황이 나타났습니다.

공수처는 일단 '이성윤 서울고검장 황제 조사 의혹'을 보도한 TV조선 기자 2명의 통화 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보도한 CCTV를 검찰이 줬다는 의혹과 관련해서입니다.

아울러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과 관련해 올해 5월 공소장 내용을 최초로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 1명의 자료를 8월쯤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석달여 가까이 공소장이 검찰에서 유출한 경로를 찾지 못하자 역으로 취재기자를 수사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공수처가 취재기자들을 수사한 정황은 해당 기자들의 친족이나 지인들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드러났습니다.

일반인인 친족 등은 공수처 수사 대상과 통화할 일이 사실상 없습니다.

따라서 공수처가 법원의 영장을 받아 기자들의 통화 내역을 확인한 뒤, 누구와 통화했는지를 통신사에 확인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처럼 기자의 통화 내역을 조회한 사실로 인해 공수처의 '사찰'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분위기입니다.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통신자료 확인이 불가피했다"는 공수처의 해명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지점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비록 법원이 기간을 제한해 영장을 발부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기간 의혹과 관련이 없는 모든 통화 상대방을 공수처가 파악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는 바로 취재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언론계와 법조계의 평가입니다.

공수처가 영장만 받는다면, 기자의 취재원을 속속들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신원이 밝혀질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공익제보자는 기자에게 제보하기 어려워지고, 마땅히 널리 알려져야 할 각종 비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폐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검찰이나 경찰이 언론에 대한 강제수사를 벌일 때 매우 신중히 접근했던 것은 이런 점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론이 수사기관의 강제 수사에 무조건 예외가 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만한 사유가 충분하다면 언론도 압수수색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번 공수처의 사례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공수처가 영장을 발부받을 때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 '공무상비밀누설죄'는 이 사건에 대해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CCTV와 공소장이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느냐는 문제부터 쟁점이 됩니다.

공무상비밀누설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비밀을 누설한 공무원은 처벌할 수 있을지언정, 정보를 받은 사람을 처벌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처벌할 수 없는 참고인에 대한 강제수사이기 때문에 그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커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란은 공수처가 청구한 통신영장이 얼마나 합당하느냐를 밝힌다면 일정 부분 해소될 여지도 있어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사 중이라 이를 밝힌다면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할 수 있어 공수처는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CCTV나 공소장을 누가 유출했는지 '주연'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조연'인 기자의 통화 내역을 들여다보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공수처는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실체적 정당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영규 기자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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