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올림픽은 정치다

이귀전 2021. 12. 2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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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제전, 국제정치 반영사례 많아
美, 인권 이유 베이징올림픽 불참
주요 동맹국들도 '외교적 보이콧'
효과 의문.. 韓, 실리적 판단해야

우리 기억 속에 올림픽은 전 세계의 축제로 기억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냉전을 겪던 미국과 소련 측이 모두 참여해 인류 평화의 대제전을 이뤄냈다. 오직 국가를 대표해 땀 흘린 선수들의 환희와 눈물이 올림픽의 전부가 됐다.

‘평화의 제전’으로 대변되는 올림픽이지만 국제정치 논리에 휘둘려 ‘인류 화합’이란 명분과 동떨어진 채 개최된 적이 적지 않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서울올림픽에 앞서 열린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은 냉전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았다.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모스크바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내지 않았다. 60여개국이 동참했다. 소련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동독, 쿠바 등 공산권 10여개국과 함께 LA올림픽 참가를 거부했다.

그 이전엔 1976 몬트리올올림픽에 아프리카 28개국이 불참한 바 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로 국제 스포츠계에서 퇴출당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친선경기를 한 뉴질랜드가 올림픽에 참가했다는 이유다.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는 스페인·네덜란드·스위스가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해, 이집트·이라크는 영국·프랑스의 제2차 중동전쟁 개입에 반발해 각각 불참했다.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정치적 의사를 더 명확히 표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동계올림픽 역시 결국 정치가 스포츠를 덮어버렸다.

물꼬는 미국이 텄다. 선수단을 제외한 외교 공식 대표단을 베이징에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지난 6일 선언했다. 중국과 외교, 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은 중국의 인권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정부는 신장에서 중국의 지속적인 종족 학살과 반인도적 범죄, 기타 인권 유린을 감안해 어떤 외교적·공식적 대표단도 베이징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1936년 나치 정권이 개최한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해 나치의 선전에 이용됐다고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베이징올림픽 참가 시 인권 문제를 지적했던 중국의 위신을 높이는 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명분 뒤에는 신냉전 세대결 구도로 흐르고 있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을 결집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미국의 발표 이후 뉴질랜드, 호주, 영국, 캐나다 등 주요 동맹국들이 ‘코로나19’, ‘인권 침해’, ‘국익 부합’ 등 여러 이유를 들며 외교적 보이콧 동참의 뜻을 밝혔다. 코로나19로 한 해 연기된 올해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일본 역시 “자유, 기본적 인권의 존중, 법의 지배 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외교단의 불참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선언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열린 도쿄올림픽에 참석한 정상급 인사는 15개국에 불과했다. 실제 주요국 정상 중 일본을 찾은 이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유일하다. 미국은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가 참석했다. 프랑스는 오는 2024년 하계올림픽 개최국이다.

외교적 보이콧 움직임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 등이 참석 의사를 이미 밝힌 베이징올림픽에 가는 주요국 정상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굳이 보이콧 의사를 밝히지 않아도 코로나19 상황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을 수 있는 명분은 충분하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잇달아 베이징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선언을 하고 있지만 동조하겠다고 의사를 밝혀봤자 어떤 실리도 챙기긴 힘들다.

더구나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나 서열 2위 리커창 총리가 오지 않았다. 당시 한정 정치국 상무위원이 개막식에, 류옌둥 국무원 부총리가 폐막식에 참석했다.

우리도 베이징올림픽에 최소한 이 정도급 인사만 보내면 될 듯하다. 도쿄올림픽 때도 한국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표로 참석한 바 있다. 주목받지 않는 조용한 외교가 더 빛을 발할 때도 있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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