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지원 서류 입수] '단어 지우고 이름 바꾸고'

문상현 기자 2021. 12. 26.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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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은 김건희씨가 5개 대학에 제출한 교원 지원 서류를 입수해 분석했다. 허위로 의심되는 이력은 12건이었다. 실제 근무한 적이 없는데도 '근무했다'고 쓰거나 경력을 부풀렸다.
12월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는 김건희씨. ⓒ연합뉴스

가짜는 아니다. 그렇다고 온전히 진짜로 보기는 어렵다. 단순 실수라고 하기엔 오랜 시간 동안 너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걸친 몇몇의 이력들은 전부 그를 돋보이게 했다. 반박과 해명에도 의심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그럴수록 물음표가 커져만 간다. 허위 경력 의혹을 받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 이야기다.

김씨는 13년간 5개 대학에 경력을 부풀린 허위 이력서를 제출해 교편을 잡았다는 의심을 받는다. 한림성심대·서일대·수원여대·안양대·국민대 등에 낸 시간강사·겸임교원 이력서에 실제 경력과 다른 내용들이 포함된 사실이 드러났다. 김씨는 한국폴리텍대학에도 5년간 출강했지만 대학 측이 채용 자료를 폐기해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시사IN〉은 김씨가 5개 대학에 제출한 교원 지원 서류를 입수해 분석했다. 허위로 의심되는 이력은 2021년 12월22일 기준 총 12건(여러 대학에 중복된 내용은 1건으로 계산)이었다. 김씨는 실제 근무한 적이 없는데도 ‘근무했다’고 썼다. 경력 관련 문구에서 단어 일부를 지우거나 바꿔 부풀렸다. 같은 내용의 경력을 이력서마다 다르게 기재하기도 했다.

김건희씨는 한림성심대·서일대·안양대에 지원하면서 서울 대도초·광남중·영락고에서 ‘근무’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이 해당 학교에서 제출받은 교사·강사·직원 등의 명단을 확인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세 학교 어디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없었다.

김건희씨가 대학에 제출한 교원 지원 서류. 김씨는 5개 대학에 경력을 부풀린 허위 이력서를 제출해 교편을 잡았다는 의심을 받는다.

윤 후보의 ‘공정과 상식’ 기조에 타격

숙명여대(김건희씨는 이 대학 교육대학원을 졸업)가 2021년 12월18일 교육부에 제출한 공문에 따르면, 김씨가 1998년 1학기 광남중학교에서 ‘교생실습(미술 교과)’을 한 사실은 확인된다. 그렇다고 해서 김씨가 광남중에 ‘근무’한 것은 아니다. 현행 교원자격검정령에서 실습과 근무는 엄연히 다른 요건이다. 법령에 따르면, ‘학교에서 교원으로 전임 근무’해야 경력상 ‘근무’로 인정된다. 교생실습은 근무에 해당되지 않는다.

김씨가 고등학교에서 미술 강사로 실제 근무한 적은 있다. 다만 한림성심대·서일대·안양대에 제출한 이력서에 적은 ‘영락고등학교’가 아니라 ‘영락여자상업고등학교(영락여상)’에서다. 2007년 수원여대에 제출한 이력서엔 근무한 학교를 영락여상으로 맞게 썼다. 다만 ‘미술 강사’가 아니라 ‘미술 교사(정교사)’로 기재하는 바람에 허위가 되어버렸다. 같은 사례는 다른 이력서에서도 발견된다. 서일대 지원 당시 김건희씨는 ‘한림대학교에 출강했다’고 적었지만 실제 출강한 학교는 ‘한림성심대학교’다. 재단은 같지만 다른 학교(한림대는 4년제 종합대학교, 한림성심대는 2·3·4년제 전문대학교)다.

김건희씨는 2012년 2월24일 취득한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과(Ex-ecutive MBA) 경영전문석사를 ‘서울대 경영대 경영대학원 졸업(석사)’으로 쓰기도 했다(안양대 이력서). 국민대에 제출한 이력서에서는 ‘서울대 경영학과(전공) 석사’로 적었다. 전문대학원 석사가 아닌 일반대학원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은 뉴욕대(NYU) 허위 이력 논란도 비슷한 사례다. 김씨는 서울대 GLA(Global Leader Association) 2기(2006년 5~12월) 과정에 포함된 5일 일정의 뉴욕대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그런데 이력서엔 서울대 GLA 연계 프로그램이 아닌 별도의 뉴욕대 과정(2006 NYU Stern School Entertainment & media Program)을 이수한 것처럼 적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수원여대에 낸 이력서에서 서울대와 뉴욕대 과정을 쪼개 별도인 두 개의 연수 과정처럼 기재했다. 안양대 이력서에선 해외 연수를 개설한 서울대 GLA 내용은 빼고 뉴욕대 프로그램만 적었다. 이를 적은 항목도 ‘학력’이었다. 괄호를 열고 ‘연수’라는 점만 밝혔다.

김씨는 재직증명서 위조, 허위 발급 의혹도 받는다. 그는 수원여대에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게임산업협회 기획팀 기획이사로 근무했고, 에이치컬쳐테크놀러지 이사로 2003년 12월2일부터 2006년 12월11일까지 재직했다는 재직증명서를 냈다. 그러나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004년 4월 출범했다. 기획팀 기획이사라는 직책도 없었다. 당시 근무했던 협회장 등 임직원 일부는 “김씨를 보거나 같이 일한 적 없다”라는 입장을 냈다. 에이치컬쳐테크놀러지 역시 2004년 11월에 설립됐다.

국민의힘과 김씨 측은 허위 경력 의혹 수습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숙명여대 대학원 교생실습 내역과 뉴욕대 연수 사진, 수료증 등 과거 자료와 사진을 찾아 공개하며 적극적으로 해명 중이다. 일부 주장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논란이 꼬리를 물고 불거졌다. 2003년 김씨가 참여한 전시 팸플릿 사진이 대표적이다. 당시 전시 이력이 허위라는 의혹에 반박하고 실제로 전시했던 사실을 증명하겠다는 의도였지만, 이 팸플릿에는 김씨가 한림대와 안양대에 출강 중이라고 적혀 있다. 앞서 이력에서 드러났듯 김씨가 출강한 학교는 ‘한림대’가 아닌 ‘한림성심대’다. 경력이 다르게 적힌 사례가 해명 자료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셈이다. 〈시사IN〉은 각종 의혹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김건희씨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김씨의 허위 경력 의혹은 최근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의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 김씨 의혹은 윤 후보의 정치적 자산이자, 선거의 대원칙으로 앞세우고 있는 ‘공정과 상식’에 타격을 주는 의혹이라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이른바 ‘쥴리’ 논란과 윤석열 후보의 장모 최은순씨의 법적 다툼보다 더 직접적으로 ‘공정과 상식’ 기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김씨를 겨냥해 의혹을 제기해온 더불어민주당은 이 지점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의혹이 확산되면서 국민의힘 선대위 내부 문제도 외부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당내 일부 중진 의원 등 관계자들은 김씨와 장모 최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털고 가야 한다”라며 후보 측에 공식·비공식적으로 여러 차례 제안했다. 윤 후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했던 만큼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논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번 허위 경력 의혹이 불거질 때까지 검증은 물론 대응 준비도 원활하지 않았다. 실제로 의혹 제기 초반 국민의힘 선대위는 구체적인 자료와 논리 대신 김씨의 이야기를 전하는 수준에 그쳤다. 국민의힘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10~20년 전 일들을 되짚어보고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야 하는 만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김씨 측과 국민의힘 선대위가 정보 공유는 물론 소통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등의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씨 문제를 담당할 선대위 내 조직이나 인선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김건희씨 의혹은 국민의힘 내부의 누적된 갈등과 간극을 더욱 벌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조수진 선대위 공보단장이 충돌한 뒤, 대선 80여 일을 앞두고 선대위에서 동반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불거졌다. 이 사태의 배경은 윤 후보 입당부터 선대위 구성까지 이어져온 이 대표와 윤 후보, ‘윤핵관’으로 불리는 윤 후보 측 관계자들 사이의 충돌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사태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김건희씨 허위 경력 의혹이었다. 이 대표와 조 단장은 2021년 12월20일 선대위 비공개 회의에서 김씨 의혹 관련 언론 대응을 두고 설전을 벌였고, 갈등은 격화됐다.

한발 늦은 ‘대리 사과’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김건희씨의 입을 향하고 있다. 본인에게 제기되는 각종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김씨의 등판에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유로 ‘당장은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최근 “이 같은 기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라는 지적에도 힘이 실린다. 윤 후보가 2021년 12월17일 공식 사과와 함께 “제가 강조해온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라고 밝혔으나 오히려 한발 늦은 ‘대리 사과’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후 일부 여론조사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근거다. 윤 후보와 선대위 등 제3자가 김건희씨에게 펼치는 보호막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씨의 허위 경력 의혹은 2021년 8월 강민정 열린민주당 원내대표가 제기한 이후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를 거쳐 최근까지 꾸준히 이어져왔다. 해묵은 의혹이 대형 이슈로 번진 건 김씨가 2021년 12월13일 YTN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히면서부터였다. 김씨는 이틀 뒤 연합뉴스에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다”라고 밝혔고, 이어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국민께서 불편함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어 사과드린다”라고 말한 이후 2021년 12월22일 현재까지 입을 닫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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