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본다? '카푸어' 열풍 속 뒤틀린 대중심리

나경연,송태화 2021. 12. 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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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어의 세계] ① 카푸어가 된 사람들, 그들을 소비하는 사회
게티이미지뱅크.

누군가 말했다. 카푸어(Car poor‧본인의 경제력에 비해 비싼 차를 구매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는 ‘용기’로 차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용기에 일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거친 욕설을 날린다.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이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여하 불문 카푸어 콘텐츠를 가장 빨리, 그리고 자주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욕하면서 보는 맛’이라지만 한낱 오락 콘텐츠로 소비하기엔 카푸어가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20%에 가까운 고금리에 인생의 절반 이상을 끌려다니는 카푸어 세계의 명과 암을 카푸어 편, 딜러 편, 상품과 제도 편까지 3회 시리즈로 짚어본다.

카푸어의 범주는 광범위하다. 하루 두 끼를 컵라면으로 먹고 쓰리잡을 뛰는 포르쉐 차주, 8000만원 짜리 BMW 차량을 전액 할부로 구매한 무직자, 월수입 300만원으로 마세라티를 끄는 두 아이의 아빠. 더 나아가 할부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차량을 압류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카푸어 세계에는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다. 본인을 카푸어라고 밝힌 이지환(25‧가명)씨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리고 왜 우리 사회가 그들의 스토리에 열광하는지 전문가들의 분석을 들어봤다.
“남자는 무조건 차 아닌가요?”…시작은 창대했지만
게티이미지뱅크.

이지환(25‧가명)씨는 평소 형들에게 ‘남자는 무조건 차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형들의 부추김에 외제차를 타보고 싶은 욕구는 더욱 강해졌다. 비싼 차에 대한 욕망은 군대에서 극에 달했다. 소심한 성격 탓인지 군대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때마다 외제차를 몰고 거침없이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멋있는 차를 타고 여자친구와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겠다고 다짐했다. 주변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고 이런 상상들이 군대 생활을 버티게 해줬다.

2019년 말 23살이 됐을 때 이씨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당시 카드론을 썼던 이력 때문에 신용등급이 7등급으로 내려간 상황이었다. 1금융권 시중 은행에서는 대출할 수 없었고 2금융권 캐피털에서 자동차 가격을 뛰어넘는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마침내 이씨는 차량 금액 4300만원 전액을 대출받고 중고 재규어 XJL의 차주가 됐다. 이씨의 차는 친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고 그는 자신감을 얻었다. 여자친구는 항상 차로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고 지인의 드라이브 요청도 많았다. 카페나 식당에 갈 때는 일부러 주차장이 큰 곳만 골라 갔다.

1년이 넘자 격월로 고장이 발생했다. 딜러가 20만㎞까지 무상 보증 혜택 대상 차량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서비스센터에 가면 특수 부위 수리라 비용을 내야 한다는 말만 돌아왔다. 주로 우측 로커암 커버와 스로틀 바디 문제였다. 1년 새 수리비만 1000만원이 나왔다. 유류비와 보험비를 포함한 차량 관련 비용은 한 달에 200만원이다. 숨만 쉬어도 차량 유지비 200만원이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셈이다. 이씨는 지금 심정을 두 마디로 표현했다. “빠듯하다” 그리고 “후회한다”.

너도나도 카푸어…“위험한 집단적 심리 문제”
게티이미지뱅크.

매년 한 해를 아우르는 상징적인 단어가 있다. 2018년에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관련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다음 해에는 생활 전반에 뉴트로(Newtro‧새로움과 복고를 합친 신조어) 유행이 불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지난해에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 빚투(빚내서 투자한다), 벼락거지(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 등의 신조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올해 한국 사회를 강타한 단어는 단연 카푸어다. 평생 집을 사지 못할 바에는 비싼 차, 명품 가방, 해외여행 등 현재의 소비에 본인 자산을 몰아넣겠다는 사고가 청년층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중 가장 고가인 외제차를 소비하는 카푸어 콘텐츠는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20·30세대에서 자신의 소득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차를 구매하는 ‘과잉소비’ 행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잉소비를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 심리가 집단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24일 “카푸어는 부모세대처럼 경제적으로 잘 살 수 없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순간을 즐기자는 삶의 태도가 반영된 소비행태”라면서 “자기 소득이 아닌 구매 차량을 담보로 잡는 과잉소비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하나의 집단 심리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집 마련에 대한 꿈이 멀어지고 당장 대출을 받아서 살 수 있는 것으로 즐기자는 식의 사고가 널리 퍼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청년들이 럭셔리 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분석도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무엇을 소비했느냐에 따라서 자기 정체성을 부여한다. 정체성이나 삶의 의미, 행복감, 만족감을 직업이나 타인과의 관계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특정 물건을 구매할 때 얻는 것”이라면서 “특히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럭셔리 상품 중 가장 눈에 잘 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타인과의 비교’가 심해진 사회 분위기도 카푸어 유행의 배경”이라며 “특히 우리 사회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비싼 것을 사려고 하는 것인데 이런 풍토는 문화적, 구조적 요인과 연결돼 있어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석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도 사회 구조적 문제와 연결된 현상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김 교수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고 소위 말하는 괜찮은 질의 삶을 모두가 다 경험하고 싶어한다”며 “청년들이 그런 하이엔드 삶을 누리려고 할 때 자원도, 기회도 없기 때문에 힘겹게 좋은 차를 사서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구조적 제약에서 나오는 잘못된 소비행태”라고 짚었다.

‘일탈적 소비’ 선망하는 기괴한 사회…시기·질투 느껴
국민일보DB.

카푸어 콘텐츠가 눈 깜짝할 사이 주류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카푸어’에 대한 뒤틀린 인식 또한 퍼지고 있다.

평균 2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중고차OOO’, ‘O진성’, ‘재OTV’들은 주로 차와 관련된 콘텐츠를 다루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카푸어 사례를 소개한다. 중고외제차를 전액 할부로 구매한 이들이 직접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본인의 나이, 직업, 소득, 한 달 차량 유지비 등을 밝힌다. 출연자들은 종종 누가 더 극한의 상황에 놓였는지를 대결하면서 할부 개월과 금리를 비교하기도 한다.

이 같은 영상 조회수는 최소 50만에서 최대 150만까지 올라가고 댓글이 수천 개씩 달린다. 사람들은 영상 속 카푸어를 ‘생각 없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난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환호를 보내기도 한다.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지만 결국 카푸어 콘텐츠에 열광한다는 점은 같다.

전문가들은 카푸어 콘텐츠의 인기 이면엔 럭셔리 상품 소비에 대한 로망이 깔려있다고 봤다. 이병훈 교수는 “다수가 일자리를 어렵지 않게 갖고 직장생활에 만족하면 카푸어 콘텐츠가 인기가 없을 것”이라며 “그런데 대다수 청년이 미래를 암울하게 보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일탈적인 소비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은근히 부러워한다. 외제차에 대한 로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비주의가 우리 사회의 지배문화가 되면서 외제차 같은 럭셔리 상품이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윤태 교수는 “SNS에 올라오는 외제차, 호화 리조트, 고급 레스토랑 사진을 보며 사치한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부러움, 시기, 질투를 느끼며 같은 소비행태를 따라간다”며 “진짜로 특정 물건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상류 집단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심리”라고 설명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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