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00도] 통일 하루 전날, 북한 주민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이설 기자 2021. 12.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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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영화 '통일전야'·'판문점 에어컨'에 담긴 통일 상상

[편집자주][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단편 영화 '통일전야: 어느 저녁식사'의 포스터.© 뉴스1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우리 곧 통일되는 거야?"

남북이 총 36차례 회담을 했던 2018년, 통일부 담당 기자였던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 해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는 먼 미래일 것 같았던 통일이 마치 임박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계 종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당시 남북 사람들이 서로 만나 사랑을 하든, 싸우든지 하는 '판타지' 작품들이 물밑 듯이 쏟아졌다고 한다.

나는 많은 영화들 중 2016년의 단편 영화 '통일전야: 어느 저녁식사'에 눈길이 갔다. 영화는 남파공작원 출신 노동당 간부 성택의 가족이 통일 하루 전날 저녁식사를 하며 나누는 대화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나온 해 북한은 4·5차 핵실험을 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북한의 '핵 포기'를 목적으로 대북제재를 강화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도 통일 하루 전날을 상상해본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상력은 시국과는 별개다.

그런데 5년 전에도 북한을 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북한 주민들이 주민들이 체제 속에서 억압을 받고, 남한 문화를 동경하고 있다는 상상은 어쩐지 남한 입장의 '전형적인' 시선으로 느껴진다. 아들 종훈은 김일성종합대학 컴퓨터학과에 나온 덕에 인터네트(인터넷)로 남한을 쉽게 접할 수 있다면서 '개굿', '극혐', '쩐다'와 같은 같은 신조어를 가족들에게 알려준다. 한술 더 뜬 딸 종례는 통일이 되면 성형수술을 하겠다고 한다. 남한 '에미나이'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서란다.

이들은 급기야 김씨 3대 일가의 사진을 보며 "못난 아저씨들", "배나온 아저씨들"이라고 폄하하며 떼버리고 그 자리에 남한 배우 송중기, 수지의 사진을 건다. 이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던 성택도 품에 김혜수의 사진을 숨기고 있다가 이내 들키고 만다. 북한 체제의 핵심인 노동당 간부 성택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기엔 다소 급진적이고 작위적으로 보인다.

다만 영화 속 장면들이 현실을 아주 외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영화에서 노동당 간부인 성택과 남한 문화를 동경하고 있는 딸·아들 간의 세대 차이는 북한이 최근까지도 신경쓰고 있는 사회적 문제다. "평양 에미나이들 중에서 남조선 드라마 한 번 안본 이가 누가 있답니까"라는 딸의 말처럼 북한 당국이 남한 드라마를 보는 주민들을 단속하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결말이 가장 현실적이다. 내일이면 통일을 할 예정이었던 남북은 결국 최종 협상이 결렬돼 다시 대결 국면에 들어서고, 성택의 가족은 다시 화목하게 저녁식사를 한다.

이런 영화를 옳고 그름을 따지며 보고, 상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흔치 않으니 대부분 상상의 영역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통일 하루 전날, 북한 주민들은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라는 상상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현실의 엄혹함에서 벗어나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단편영화 '판문점 에어컨' 스틸컷.© 뉴스1

또 다른 단편영화 '판문점 에어컨'은 오히려 남북 관계가 좋았던 2018년에 개봉했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 양측의 긴장감, 적개심 혹은 편견과 오해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영화는 고장 난 에어컨을 고치기 위해 판문점에 간 수리기사가 북측에 설치된 실외기에 접근하다가 북한 병사들과 대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판문점 남측의 경비 담당 장교는 "평화회담의 결과와 달리 이곳은 아직 위험지역"이라며 수리기사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다. 남한 병사들은 '안전'을 위해 수리기사 허리에 밧줄을 감고 힘껏 당기며 경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수리기사는 결국 넘어지고 북한 병사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침범한' 기사에게 이내 총부리를 겨눈다. 이들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남북의 분단 상황, '판문점'이라는 상징적인 장소가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특수하고도,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다.

영화 '통일전야', '판문점 에어컨' 모두 남북이 처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마음껏 상상력을 펼친 결과물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생각해보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2018년, 당시엔 종전선언을 비롯한 남북의 평화적 공존, 더 나아가 통일에 대한 상상력이 꽃폈던 시기다. 그러나 3년 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종전선언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고 북한은 다시 남한에 협상 결렬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한반도에서 통일은 어쩌면 가장 쉽게 해볼 수 있는 상상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판타지'로만 여겨질까.

sse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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