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팔 여성들의 외침 "검문소 지날 때마다 우린 짐승이 됩니다"

신선민 입력 2021. 12. 25. 06:01 수정 2021. 12. 2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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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건설된 이스라엘 정착촌 분리 장벽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경계선이나 국경은 감옥과 같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가두는 감옥 말입니다. 언젠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경계를 벗어나 자유와 책임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A.J. 24세 팔레스타인 여성)

경계선이나 국경 같은 ‘선’은 일종의 규범입니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선들이 있지만 ‘선의 억압’을 특히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을 넘나들며 살아야 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입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진행형입니다. 2차대전 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던 땅에 국가를 세우면서 갈등은 시작됐습니다. 이후 4차례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난민 처지가 됐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인 ‘여성’들의 삶은 더 고단합니다.

국내 인권단체 ‘아디’의 팔레스타인 연구팀은 이-팔 분쟁이 야기한 국경선과 장벽, 검문소 등을 오가는 팔레스타인 여성 15명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 여성들이 한국에 전하는 메시지를 인권 보고서로 발간했습니다.


■ 그들의 땅에 ‘선’이 늘어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현재 팔레스타인 점령지(서안 지구,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에서 ‘선’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1949년 설정된 군사 분계선인 ‘그린 라인’보다 더 안쪽으로 이스라엘 분리 장벽이 건설되고 있고, 동예루살렘과 서안 지구 내부에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과 군사시설, 검문소 등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넘을 수 없거나 특별한 허가가 있어야 하는 선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를 효과적인 자위 수단으로 여기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점령의 상징입니다. 이 ‘선’들의 영향은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생활 공간을 점차 좁히고 옥죄고 있는 것입니다.


■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체감하는 검문소…“짐승 된 느낌”

점령지 경계선에 위치한 검문소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 뒤 불법 정착촌에서 일하게 된 27살 H.M은 생계를 위해 바르칸 정착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터로 가기 위해서는 매일 군사 장벽과 전자 출입문, 장벽과 철조망들을 거쳐야 합니다.

“이런 선을 넘을 때마다 저희는 언어 폭력, 불순한 의도가 다분한 미소, 여군이 강요하는 정당하지 않은 수색과 같은 모욕을 견뎌야 합니다. 이 중에서 전자 출입문과 그곳을 지키는 군인들이 저희에게 특히 굴욕감을 줍니다. 이들에게 수색을 당하는데, 가끔은 몸수색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무시하는 데 익숙합니다. 이런 일들은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법원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을 겪는 것이 정말 불쾌하고 지금도 계속해서 겪고 있지만 저는 생계를 위해서 선을 넘어야만 합니다.

* 60살 여성 난민 F.A.는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된 땅의 병원 청소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때 ‘우리 땅’이었던 곳에 들어가기 위해 검문소를 통과할 때는 “짐승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신의 가족이 한때 소유했으나 점령으로 인해 유대인들의 정착지가 되어버린 땅에서 노동자로 사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또한 군 검문소를 통과할 때의 짐승이 된 듯한 느낌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일 것입니다.

* 50살 Kh. M.은 매일 출근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검문소를 ‘가축의 통로’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 들이 통과해야 하는 검문기는 가축의 통로에 더 가깝습니다. 점령 체제와 그 군대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존엄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굴욕과 모욕을 주는 검문소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공장식으로 사육당하는 동물처럼 취급됩니다. 이러한 현실은 저를 슬프게 하며 이 삶이 부당하다고 느낍니다. 한때 선조들의 자리였고 우리의 자리여야 하는 곳에 가기 위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수없이 굴욕을 당하면서도 저는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 체포된 채 ‘선’을 넘는 여성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9월 3일 기준 팔레스타인인 4,600명이 수감돼 있으며 이 중 약 11%에 달하는 500명은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억류된 상태로 행정 구금돼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은 이스라엘의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며, 이스라엘 군사법정은 만 12살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사법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만 12살 이상의 팔레스타인 청소년도 수감 대상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매해 500~700명의 팔레스타인 청소년을 군사법정에 기소하는데, 대다수는 12~17살로 이들의 혐의는 그저 돌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체포된 채로 ‘선’을 넘는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도 공개했습니다.

* 14살에 이스라엘군에 체포된 여성 E.S.는 고문을 당한 뒤 청력 일부를 잃었습니다. 현재는 암 투병 중입니다.

“저는 1988년 1월 29일 체포되었고, 당시 저는 14살이었습니다. 그 나이대 누구나 그렇듯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 자정 무렵 자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집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서 잠에서 깼어요. 아버지께 달려가 폭발음에 대해 물었더니 이스라엘군이 와서 제 형제를 체포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부모님도 14살짜리 여자애인 저를 잡으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스라엘 군인이 와서 ‘딸을 내놓으시오’라고 오만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울면서 ‘이 애는 어린 소녀입니다, 열네 살밖에 안 돼요’라고 사정했습니다. 하지만 군인은 상관하지 않고 저에게 수갑과 눈가리개를 채웠습니다.”

“심문은 정확히 45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내가 하지 않은 일을 자백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문했어요. 머리 위로 손을 들고 몇 시간 동안 서 있게 했고, 제가 지쳐서 조금만 움직이면 군화로 제 다리를 걷어찼습니다. 그들이 저를 작은 방에 가두고 밤새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도록 한 끔찍한 밤을 기억합니다. 심문 중에 제가 계속 그들이 씌우는 혐의를 부인하자, 화가 난 한 이스라엘 병사가 제 귀를 힘껏 때렸고 그렇게 청력을 잃었습니다.”

* 페이스북에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알몸 수색을 당한 H.O.는 결국 1년 반의 실형을 살게 됐습니다.
“2018년 2월 6일 젊은 팔레스타인 남자가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순교했어요. 저는 정말 화가 났고, 페이스북에 글을 썼어요. ‘오늘은 좋은 아침이 아니야, 망할 이스라엘’ 그리고 순교자의 이름을 해시태그로 공유했고요. 그들이 같은 날 오빠에게 전화해서 게시물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어요. 이스라엘 점령군은 제 게시글이 숨은 의미가 있는 메시지이고, 제가 검문소에서 작전을 실행해서 이스라엘 군인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했어요. 그들은 제가 그 슬픈 날을 어떻게 느꼈는지 표현한 게시물 때문에 나를 체포했어요. ”

“조사실에서 10일을 지냈고, 1년 반의 실형을 선고받았어요. 이스라엘 법정은 정말 감옥 그 자체보다도 더욱 공포스러웠어요. 10개월 동안 이스라엘 법정을 왔다갔다 했어요. …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알몸 수색이었어요. 그들은 제가 구금 센터에서 나갈 때, 잘라마 감옥에서, 구금 센터로 들어올 때, 총 3번을 알몸 수색했어요.”


■ 팔 난민여성 21%, 임신 중 검문소서 구타·최루탄에 노출

팔레스타인 12개 난민 캠프(서안 7곳, 가자 5곳)의 난민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현지 인권 단체인 MIFTAH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33%는 이스라엘 점령군의 물리적 공격에 직접 노출돼 있고, 37%는 구금이나 심문에 노출돼 있습니다.

38%의 난민 여성과 가족 구성원은 이스라엘 군대의 습격이 있을 때와 검문소나 종교 장소를 방문할 때 언어 폭력에 노출됐다고 응답했습니다.

또 21%는 임신 중 이스라엘 검문소에서 구타나 최루탄에 노출됐고, 4%는 이스라엘 검문소에서 낙태하거나 출산했다고 했습니다.

이들 중 4%는 이스라엘군이 가족의 가장을 감금하거나 살해한 후 표준 이하의 환경에서 일하도록 강요받았고, 2%는 자녀를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군이 가족을 살해하거나 구금한 후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난민여성 또는 그 자녀 중 5%는 점령과 관련된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64%는 점령에 의한 통제로 종교 활동을 하거나 휴양지를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적인 고통도 상당합니다. 이스라엘 점령 조치 때문에 심리적 고통, 경련, 발작을 겪고 있다는 응답은 31%에 달했고, 72%는 이스라엘군의 총탄, 전투기, 폭탄 또는 팔레스타인 구급차 소리를 들었을 때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보고했습니다. 난민 여성 49%는 여전히 살인과 파괴의 장면이 기억에 새겨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분쟁과 갈등으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이 찾아올 날은 언제일까요? ‘2021 팔레스타인 인권 보고서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아디’의 홈페이지(https://www.adians.net)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신선민 기자 (fresh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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