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배달원 출신, AC밀란을 뜨겁게 달구다

이영빈 기자 2021. 12. 2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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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스, 세리에A 단독 2위 이끈 주역으로 우뚝
AC 밀란의 주니오르 메시아스(가운데)가 지난달 25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벌인 챔피언스리그 B조 조별 리그 경기에서 후반 42분 머리로 선제 결승골을 넣는 모습. 그는 “내가 이곳에서 뛰게 될 거라고 끝까지 믿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골을 바친다”고 했다. 메시아스는 축구를 포기하고 가전제품 배달 일을 하다 5부 리그 수준 팀에서 새로 출발해 1부 리그까지 올라오는 드라마를 썼다. /로이터 연합뉴스

“저도 제 이야기를 신이 쓰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프로 1부 리그인 세리에A의 AC 밀란이 23일 2021-2022시즌 엠폴리와의 원정 경기에서 4대2로 승리하며 단독 2위가 됐다. 이번 시즌 합류한 주니오르 메시아스(30·브라질)는 오른쪽 날개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후반 42분 헤딩 결승 골로 팀의 1대0 승리를 이끄는 등 팀의 주축 멤버로 자리 잡았다. 동네 축구에서 시작해 세계 정상급 무대까지 올라선 메시아스는 AC 밀란에 ‘하늘이 내린 보물’ 같은 존재다.

메시아스는 브라질 축구 구단 크루제이루 유소년 팀에서 17세까지 뛰다 성인팀 입단에 실패했다. 이후 3년간 꾸준히 프로의 문을 두드리다 20세에 축구화를 벗기로 마음먹었다. “좌절감에 술을 많이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속도를 높이다 저도 모르게 졸았는데, 길가 옆 어딘가에 부딪히면서 차가 멈췄어요. 누군가 날 구해줬다는 생각이 들었죠.”

‘똑바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메시아스는 부양해야 할 아내와 아들을 위해 형이 정착해 있던 이탈리아로 건너가 주방용품 나르는 일을 시작했다. 때론 무거운 냉장고를 혼자 끙끙대며 날라야 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축구였다. 그가 정착했던 토리노엔 같은 남미 국가인 페루 출신이 많았는데, 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축구를 하게 됐다. 그는 스물네 살 무렵 우연히 동네 축구장을 지나가던 아마추어팀 감독의 눈에 띄었다. 메시아스의 재능을 본 감독은 ‘전업 선수’에 도전하라고 설득했다.

메시아스는 처음에 이 제안을 거절했다. “축구 때문에 또 상처받고 싶지 않았어요. ‘신의 계시’가 있으면 하겠다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얼마 뒤에 기다리던 거주 비자가 4년 만에 나온 거예요. 이게 계시구나 싶어 다시 축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죠.”

메시아스는 늦은 나이에 다시 뛰어든 만큼 축구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매일 훈련장에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늦게 떠났다. 이런 노력이 꽃을 피웠다. 그는 5부 리그 격인 카살레FBC에서 시작해 세리에D(4부) 치에리, 세리에C(3부) AC고차노, 세리에B(2부) 크로토네로 옮겨갔다. 어느 팀에 가더라도 공간을 차지하는 전진 드리블, 볼을 지키는 개인기, 넓은 시야,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역량, 킥의 정확도 등을 앞세워 탁월한 활약을 했다.

메시아스는 크로토네의 세리에 A 승격에 힘을 보태면서 6년 만에 5부에서 1부까지 올라갔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전통의 명문 구단인 AC 밀란에 임대 신분으로 입단했다. 30세 중고 신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으나, 전설적인 수비수였던 현 AC 밀란의 스포츠전략 디렉터 파울로 말디니가 영입을 적극 추진했다고 알려졌다. 말디니는 세리에D에서 뛰고 있던 메시아스를 보고 “특별한 재능이 썩고 있다”며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메시아스는 말디니의 안목이 탁월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골뿐 아니라, 처음 팀에서 선발로 나선 지난 2일 제노아와의 리그 경기에서 2골을 뽑아냈다. 그는 “몇 년 전까지 목장갑을 끼고 냉장고를 날랐는데, 어느새 세계적인 선수들 옆에서 뛰고 있다는 게 지금도 익숙하지 않다”며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신이 써 내려가는 듯한 메시아스 스토리’에 팬들은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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